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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비가 퍼붓는 밤. 물이 차서 오토바이가 잠기지 않을지 창밖을 보는데 개 한마리가 비를 피하지 않고 어느 집 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처량하다기 보다 의미있어 보이는 개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보통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개들이 대부분인데 비가 쏟아붓는 길 한복판에서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저렇게 꼿꼿하다. 밥을 기다린다 한들 저 비에는 누구도 밥을 주러 나서지 않을텐데. 저 집에서 개에게 밥을 주던 사람은 지금 저 개의 모습을 보고 있을까. 보았다면 비옷을 입고서라도 밥을 주었겠지. 여기 사람들은 길거리 개에게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밥을 챙겨준다. 말하자면 저 개는 집 밖에서 집을 지켜주는 개이다. 동네에 여러 집이 키우며 길목을 지키는 개. 처음엔 그런 방식이 무책임해 보였다. 지금은 굶으면 배가 고프..
갑자기 유치원생 엄마 따라 학교가느라 갑자기 유치원생이 되어 버린 막내. 몸은 크지만 성장 속도가 독창적이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긴장되면 바닥과의 접촉면적을 늘리려 누워버린다는 게 정말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지마자 누워 버리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엄마 때문에 집에서 놀지 못하고 학교에 온 아이에게 미안하고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게 미안하다. 내 수업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는 울며 엄마를 찾아오는 막내가 적응을 좀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 잠든 아이가 짠하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까지는 따라오는 아이가 고맙다. 교실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실갱이가 언젠가는 끝날텐데도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은 멈..
쉽게 만족하는 나를 닮았다. 불편한 것을 싫어해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나를 닮았다. 현실적인 목표가 아닌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만 가지고 있는 나를 닮았다. 기분이 나쁘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닮았다. 아무려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나를 닮았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닮았다. 어제 너에게 화가 났던 건 니가 나를 닮은게 미안해서 였나 보다.
이기적이다 중3때 주번을 같이 하던 친구 하나. 동그랗고 까만 뿔테에 귀여운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난 이기적이야" 자기 반성 보다는 약간 자랑섞인 말투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나라면 감추고 감출 말을, 들으면 화를 낼 말을 자기에게 하다니 놀라웠다. 맛난 점심을 사주신다는 분이 계셔서 오랫만에 카페에 가 앉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밖으로 나가며 우산을 펴는 모습이 통유리 넘어 보였다. 밖에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 도착하고 비와서." 일행 중 한 분이 멋쩍은 듯이 허허 웃으셨다. 그 웃음을 들은 내가 나에게 말했다. '너 참 이기적이구나. 지금 밖에 있는 사람은 비를 맞는데 너만 안 맞아서 다행이라구.' 순간의 이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기적인 사람이다. 남..
초라함에 대하여 글 쓰기를 피해 그림으로 가보았다. 문예창작과 수업을 6개 신청했다가 4개를 빼고 그 자리를 그림 수업으로 채웠다. 여전히 어렵다. 뭐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 글이 어렵고 그림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내가 어렵다. 나를 쓰는 일이, 나를 그리는 일이 어렵다. 왜? 초라해서. 보잘것 없어서. 나를 쓰고 그리려 하면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막아선다. 머뭇거리고 주저하게 하다가 혼잣말을 한다. '지가 뭐라고..' 설거지통에 그릇과 빨래통에 빨래와 방바닥에 먼지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격을 얻는다. 시간을 얻어 앉으면 내 앞에 초라함이 앉는다. 손 한번 휘저어서는 갈 생각이 없는 손님이다. 많이 떠나 보냈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초라해질 미래까지 벌써 와서 현재 옆에 앉아 있다. 그래. 너를 써야 하는구나. 너를 이..
사랑받았다 발 모서리에 티눈이 있다. 신생아 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자던 둘째를 안고 밤새 좁은 마루를 원을 그리며 돌다가 생겼다. 느껴질때쯤 한 번씩 봐주면 그만인데 최근에 신경쓰여서 빼고 밴드를 붙여두었다. 저녁에 양말을 벗었다. 앞에서 놀던 막내가 고개를 숙이더니 발에다 "후 후" 해준다. 밴드 붙어있다고 아프다고 발에 얼굴을 대고 후 불어준다. '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정리 하는 사이 눈물은 이미 흘러내렸다. 55개월 한국 나이로 여섯 살. " 물 주게요." 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새어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제대로 할 텐데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젠가 하며 산을 넘고 있었다. 정상을 등지고 아이를 봐야겠다. 말 시작한 지 이제 7개월 밖에 안 된 아이다. 한창 ..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야 사춘기를 늦게 시작한 큰 애와 달리 둘째는 13살 사춘기이다. 모든 일에 시큰둥,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겠어요", "상관없어요" 가 돌아온다. 큰 애한테는 답답해서 화를 낸 적이 많았는데 둘째를 보면 울고 싶다. 내일이면 6학년 수업을 시작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시작도 전에 미간을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요?", "왜요?", "뭐요?" 하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다시 태도를 논했다. 태도, 그놈의 태도를. 최근에 둘째와의 (혹은 나 혼자만의) 갈등을 겪으며 최대한 따뜻하게 조용하게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자기 전에 아이에게 친절히 인사하며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한참 마음을 추스르..
성장통 "그렇게 말하니까 놀러다닌다고 비꼬는 거 같잖아..." 아들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했다. 거리가 멀어서 남편이 데려다 주어야 했다. 시간이 문제였다. 남편은 시간을 바꿔보라고 했다. 아들은 친구들하고 이미 약속한 시간을 바꾸기 위해 연락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중재한다고 끼어든 나에게 아들은 감정을 쏟아낸다. 속상하다는 말이라 듣고 싶지만 말투를 문제삼으며 의도를 오해하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꾹 참았다. 아들을 데리고 온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다. 아들은 나에게 와서 속상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중재를 하다가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심한 말이 나갈 거 같은 입술을 깨물고 남편을 불렀다. "당신이 화 난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내가 중간에서 얘기할 수록 문제가 더 커져" 남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