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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능력 겸손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 아닌 그를 떠올렸다. 그에게 마지막 퍼즐이 겸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지나가려 했는데 모양과 능력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다.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한다...곰곰히 생각해보니 모양은 없으나 능력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인 것을 의심할 수 없어졌다. 그는 모양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양을 놓지 못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나이다. 대부분의 모양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다 가지고 있는 게 나이다. 그는 거슬린다. 모양을 갖추려 하지 않아서이다. 갖추려 하는데 되지 않는 거라기 보다 왜 그런 모양을 가져야 하는지 되묻는 편이다. 모양을 따르지 않으려 하는 그를 교만하다고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가끔 그의 자찬에 화들짝 하는 부분은 그게 사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말..
악함이 되는 약함 ‘무시’에 약한 나를 발견하고 무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가운데 당한 ‘무시’가 나를 깊이 찔렀다. 아프니 화가 나고 분노가 일었다. 글과 기도를 동원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화를 쏟아냈다. 설거지를 하며 산책을 할 때도 청소를 하면서도 분노를 쏟아냈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를 압도했고 계속 밀고 들어왔다. 이틀 쯤 열심히 쏟아내고 나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기도는 이렇게 했다. “이제 제 마음에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그냥 있었다. 문득 ‘무시’ 에 대해 알고 싶어져 너튜브에서 무시를 검색했다. 한 영상을 보았다. 알게 되었다. 무시를 당해 고통스럽게 보낸 며칠동안 이번에 나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걸. 전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나를 비..
아들아 아들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안에 있다. 떠나기 전에 마음이 좀 그랬다. 지인에게 “아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 못 잘 거 같아” 라고 하기도 했다. 전에는 그랬다. 남편이 혼자 어디를 가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디를 가고 나면 멍하고 느려졌었다. 내가 걱정하지 않고 방심하는 순간 무슨 일이 생길거 같아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안 좋은 방향으로. 내가 집을 떠나게 될 때는 혼자 떠난 나를 걱정했냐면 그렇지 않다. 남겨진 아이들을 걱정했다. 집을 떠나 일어날 일이 걱정인 게 아니라 내가 함께 있지 않다는 게 걱정이었던 거 같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함께면 안전하고 나와 떨어지면 큰 일이 날까. 함께일 때, 같이 있을 때 해주어야 할 일, 나를 떠나서도 잘 지낼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일을 ..
증거를 대고 싶다.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의견이 갈렸다. 그는 그럴 리가 없다 했고 나는 그렇다 했다.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에 대해서 까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두 마음. 그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도록 두고 싶은 마음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게 하고 싶은 두 마음 사이에서 싸우다가 그가 생각하는 대로 두고 싶어졌다. 나도 실은 그럴 리가 없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증거를 대고 싶네” 라는 말이 그가 듣지 못하게 나왔다. 그 말에 내가 놀랐다. 증거를 대고 싶다… 내 생각이 옳다는 증거.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 그 증거라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의 말, 눈빛, 그때의 공기, 가장 핵심은 그 말에 대한 나..
헌신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아이가 같은 교회를 다녔다. 학교에서는 나를 모른 척 하는 했고 나도 그렇게 했다. 교회에서는 집에도 왕래하는 사이였다. 예배가 마치면 항상 그 아이 데려다 주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항상 데려다 주었다. 얼핏 스치는 기억에 예쁜 아이들은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도 있었던 듯 하다. 그 아이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말도 못 걸 아이와 이야기하며 걷는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 친구와 둘이 걷는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배가 아파서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 말은 못하고 오늘은 나 먼저 집으로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안 된다고 자기를 데려다 주고 가라고 했다. 우리 집을 한참 지나 그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오는..
부끄러운 엄마 "우리 딸 생일이에요. 생일잔치에 초대해요." " 아. 네. 축하드려요. 가야죠.^^ 언제예요?" "이번 주 일요일이에요" "네 . 알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카톡으로 날짜와 시간이 찍힌 초대장이 와 있다. 그 날은 바로 우리 딸 생일이었다. 날짜만 기억하고 있는 엄마와 그 요일에 딸을 위한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 물론 우리 딸은 어디에 가도 내 옆에만 있다. 친구하고 놀기만 하면 운다. 초대하는 엄마도 우리 딸이 사람 많은 곳에서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괜찮을 지 물었다. 그 땐 그것때문에 잠깐 고민도 되었지만 지금은 완전 다른 차원의 고민이 든다. 내 딸도 그날이 생일이라는 것을 알려야할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수 있다. 그럼 생일선물을 주면서 실은 그날 우리 딸 생일이라 ..
종이장판 위의 집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검소해야만 했던 부모님은 이사할 집에 종이장판을 직접 붙이셨다. 그렇게 깔린 노란 종이장판은 네모반듯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도 안계시고 남동생도 놀러나가 혼자인 집에서 나는 책을 꺼내든다. 해가 제일 잘드는 창문 가까운 종이장판 한 칸을 내 집으로 삼는다. 큰 방에 딸린 부엌 하나 집이어서인지 내가 어려서였는지 방은 넓었다. 그래도 그 한 칸만 이 내 집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작은 배개랑 책 몇권을 가져다 두고는 그 네모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기로 하고 웅크려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한 칸 안에서 삐져 나가지 않으려 긴장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다 조금 지나면 내 집은 두 칸이 되기도 했다. 어스름하게 저녁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았다. 책이 나를 잡고 있기도 했..
억울함 지나가는 아이에게 말을 건 이유는 아이의 표정이 뭔가 좋지 않아서였다.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도 없이 바로 말을 건넸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 아이가 지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말 걸지 말라는 것이 거슬렸다.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여 말을 건네는 것과 건네지 않는 것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내가 시작한 말을 제지 당한 것에 발끈한 것이다. 더 파고 들자면 "그래서 내가 말 걸어주는 거야."라고 계속했으면 끝날 일을 제지당한 채로 말을 못한 것이다. 그 후에 나온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누가 있든 아랑곳 없이 기분 상했음을 나에게 말과 표정과 눈빛으로 쏟아냈다. 순간 내 얼굴은 굳어졌고 대화는 끊어졌다. 어색함을 이기기 힘들어하는 다른 이가 말을 시작했고 나도 그 주제에 동참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