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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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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리며 씨 뿌리는 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정산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도 그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내 마음은 또 나를 피해자의 자리에 세워 두었다. '씨 뿌리는 중이었다.' 는 것을 깨달았다. 돌려 받아야 할 것도 아니고 대신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닌 씨가 뿌려지는 중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적어내려가다가 오타가 났다. 씨부리는 자. 고운 마음으로 축복의 말을 더해 기도하며 뿌리는 씨도. 모난 마음으로 짜증을 내며 마지 못해 뿌리는 씨도. 일단 뿌려지고 나면 내 손을 떠난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뿌리고 싶지만 늘상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시126:5-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
속아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학교 앞 판촉에 넘어가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지를 엄마를 졸라 샀다. 정말 첫 장부터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지였다. 일년을 구독했는데 비닐도 뜯지 않고 쌓여가는 문제지는 다 야근을 해가며 일하는 부모님의 피 같은 돈이었다. 대학생 때도 학교 앞 봉고차에 타서 역기로 써도 될 만큼 무거운 경제학사전을 샀다. 역시 한 장도 읽지 않고 그대로 비싼 쓰레기가 되었다. 비닐도 뜯지 않은 문제지와 한 장도 펼치지 않은 사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일까? 그 물건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을 나에게 속은 것일까?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속아서 쓸모가 없는 물건을 내가 벌지..
할머니의 주머니 할머니의 주머니는 나를 향해 열린 적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뭐라도 손에 쥐어주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비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손으로 입히고 키우고 게다가 일찍 아버지를 여윈 손녀에게 주고도 주고도 모자라셨을것이다. 할머니는 아버지 있는 내가 달갑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 고생하는데 상고가서 돈 벌라고 하셨던 말은 우리 아버지를 위한다기 보다는 너도 아버지 없는 딸처럼 살아라로 들렸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내가 태어났을때 가장 크게 한 번 열렸던 것 같다. 그 때 나에게 '복덩이'라고 하셨다고.. 할머니의 주머니가 보드라운 빨간 벨벳의 금실을 두른 주머니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주머니는 나에게도 열렸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인내 인내의 길에 선다는 것. 다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주는 모든 유익을 인정함에도 머뭇거리게 되는 길이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는 길. 자기를 알지 못하고 달려드는 사나움에도 저항하지 않는 길.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내어놓아야 하는 길. 명백하게 밝혀진 잘못 뒤에도 있는 속사정을 알아주고. 내가 알게 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일도 비밀로 만들어 주고. 내 편에선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사람의 슬픔도 이해하고. 비난후에 해 주는 밥도 먹고. 나를 험담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인사하는. 안면몰수를 당하고도 부탁을 들어주고. 책임은 다 지지만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양도하는. 다 걸어와서 결말을 아는 길도 다시 함께 가는. 그러면서 넓어지고 깊어지고 조용해지는 인내의 길... 이 길에..
결심 대신 스콘 오전 수업 마치고 점심시간 도서관으로 향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온 카톡에 대답을 하고 났는데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스콘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지 않았는데.. 남편을 바라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나 아니면 아침부터 쌀 씻어 밥하는 수고를 누가 알아준다고. 나 때문이 아닌 것처럼 늦잠 자는 막내딸, 엄마 살에 붙어있어야 자는 공주 아침 잠 설치지 말라고 아침 밥을 해 주는 남편이다. 그리고 또 내 점심을 챙겨다 놓았다. 다 세심하게 알아주어야 하는데 어떨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만다. 그럴 때 서운하겠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결심을 내려놓고 스콘을 먹으련다.
울며 안기다.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부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첫째 아이 후 겪었던 유산이 떠오른다. 혼자 품었다 혼자 떠나보낸 아이이다. 내 생애 가장 춥고 서러운 기억이다. 하혈을 하며 누워있어 몸을 뒤척이기조차 어려웠다. 첫째는 최대한 멀리 있게 되었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쉬어야 된다는 이유였을까. 울며 안기고 싶었다. "너 그때 그 아이 낳았으면 큰일났어. 내가 지금 말은 못하지만 다 보여주셔서 나는 다 알어." 라는 말은 나로 그 때 이야기를 더 이상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게 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아무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을테니.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도 멀어졌었다. 약 2년정도의 시간이었을거다. 나는 그 ..
다시 여자. 돌 맞을 이야기지만 고양이를 싫어한다. 개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적인 것. 본능적인 것. 내가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꿈으로 만난 머리와 꼬리, 껍질만 남겨지고 몸통을 빼앗긴 검은 고양이가 불쌍해 눈물이 났다. 개들이 배가 고파 그랬다니.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고양이는 꿈에서 여성의 에너지라고 한다. 다시 여자. 나는 내가 여자인 것이 싫다. '싫었다'고 쓰고 싶지만 여전히 싫다. 조심해야 해서 싫고 참아야 해서 싫다. 누가 그러라고 하냐. 그러면 안전할 거 라고 내가 붙잡고 있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한다. 지하철에서 부딪친 남자의 '미친년'소리가 그렇게 말한다. 마음은 내가 마주하든 피하든 나를 전복시킬 것이다. 몇 번이고. 나를 집어삼켰다가 뱉어낼 것이다. '여자인 나'로 나를 향한 항해를..
옳다.. 열심히 하다가 열심히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미워한 적이 있다.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다가 내 길을 준비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 열심이 나를 부추긴 것인지 내가 그 열심을 붙잡은 것인지 알 수 없이 미쳐서 돌아갔던 적이 있다. 열심으로 한 일들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함께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 열심으로 인해 질투의 대상이 되어 그 질투심에 희생양이 되었었다. 내가 바보 같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했는지 후회했다. 그 시간동안 만들어진 나를 부인하며 어디서든 너무 열심히 해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나를 모른척하고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그러니까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메시아 신드롬 있냐? 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니가 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