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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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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비가 퍼붓는 밤. 물이 차서 오토바이가 잠기지 않을지 창밖을 보는데 개 한마리가 비를 피하지 않고 어느 집 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처량하다기 보다 의미있어 보이는 개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보통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개들이 대부분인데 비가 쏟아붓는 길 한복판에서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저렇게 꼿꼿하다. 밥을 기다린다 한들 저 비에는 누구도 밥을 주러 나서지 않을텐데. 저 집에서 개에게 밥을 주던 사람은 지금 저 개의 모습을 보고 있을까. 보았다면 비옷을 입고서라도 밥을 주었겠지. 여기 사람들은 길거리 개에게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밥을 챙겨준다. 말하자면 저 개는 집 밖에서 집을 지켜주는 개이다. 동네에 여러 집이 키우며 길목을 지키는 개. 처음엔 그런 방식이 무책임해 보였다. 지금은 굶으면 배가 고프..
하얀 백지 하얀 백지가 눈을 내리깔고 나를 쳐다본다. 이 새하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뭘 쓰려고? 또 뭘 적어서 나를 얼룩지게 하려는 거야. 가만히 있어. 조용히 해. 쓰지 마. 니가 뭐라고? 뭐가 대단해서 글을 쓰겠다고? 대단해서가 아니야. 소중해서이지. 나도 내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냐. 미울 때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거든 미안할 때도 있고 안쓰러울 때도 있거든. 그래도 소중해. 그래서 쓸 거야.
내게로 온 선물. connect 라는 단어를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몰랐다. 모르고도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했으니 기적이다. 졸업 후 국제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는데 그 세미나 주제가 connect 여서 외우지 않을 수 없었다. 5박6일동안 진행되던 불편하기만 했던 자리에서 얻은 몇 가지 중 하나다. 대규모 집회나 단톡방 속에서 방황하는, 남편과 세 아이가 집에 있어도 책 속에 들어가면 연결이 끊기는 아내고 엄마다. 그런 나에게 연결이 선물로 왔다. 다른 이가 아닌 나에게 완벽한 시간에 도착했다. 주신 이에게 감사하며 베푸는 이에게 감사하며 준비된 나에게도 고마워하며 누릴 참이다. 감추고 싶은 것을 하나 내어놓고 글을 시작하니 훨씬 편안하다. 이 길에 발을 내딯는다.
내 친구 앤.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았다.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빙 돌아갔는데 그 공간이 뒷마당이기도 했다. 3층에 사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책 볼 사람이 있으면 주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딸이 볼거라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주인아주머니는 뒷베란다를 통해 책꾸러미를 마당으로 던지셨다. 빨간머리 앤과 함께 소공녀, 작은아씨들까지 내 어린시절의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노란종이의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밖이 환할 때 읽기 시작해 방이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고 읽어 안경을 일찍 쓰게 되었다. 앤이 메튜의 마차를 타고 달리던 길. 다이애나와 걷던 길들을 나도 걸었다. 앤이 느끼던 절망과 기쁨, 부끄러움과 두려움, 거침없이 쏟아내는 감정들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이사오기 몇 주 전인 걸로 기억한..
실패 좀 해보자. 도전이라는 게 없었기에 실패도 없었던 인생이다. 하고 싶은 걸 못했다거나 크게 실패해 본 기억이 없다. 할 수 있는 것만 했고 조금이라도 못 할 거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학교도 점수에 맞춰서 갔고 처음사귄 남자친구랑 결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학원 진학 실패 하나 정도가 생각난다.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었다. 취업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대학원을 가야겠다 생각하는 딱 그 마음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심리학과에 관심이 있어 산업심리학과 원서를 다운받아 자기소개서등을 열심히 쓰고 준비해 찬 바람이 부는 날 낯선 캠퍼스에 등록을 하러 갔다. 오래 헤매다 접수처를 찾아 지원서를 내밀었는데 서류를 살피던 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인을 하더니 산업심리학과는 올해 모집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준비해..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말고 내 방학이 끝났다. 다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방학내내 학과 공부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작할 땐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하겠다 했는데 신나게 논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버렸다. 다행히 글쓰기 수업을 들어 의미가 있었지 아니었으면 정말 시간을 허비한 느낌이 들었을 거 같다. 뭔가 되게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애들 셋이랑 복작거리면 한 거 없이 하루가 훅 지나가도 잠자리에 들 때 이정도면 잘 보냈다며 맘 편한 나다. 방학시작할 때 삶이 그대로 글이 되어 나오기를 소망했었는데 뭔가 쓰려하면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고 아파온다.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징징대는 것도 우습지만 내가 그런 사람인가보다. 아픈 마음이 내 안에 스며드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마..
아프지 않으려 쓰는 아픈 글. 불러주시는 문구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를 4주째. 내 인생의 이불을 탈탈 터는 기분이다. 지나치게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한 주제들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더는 피할 수 없이 글로 내어놓아야만 하는 순간. 머리에서 꺼내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에 심장이 아프다. 오늘은 감정이 더는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실은 더 울 수 있었는데 엄마가 왜 저러나 쳐다보는 놀란 애들 때문에 좀 참았다. 통곡하고 싶다. 소리내서 울고 싶다. 악을 쓰며 울고 싶다.
선을 발견하다. 선들을 발견했다. 내 마음에 그어진 여러개의 선을 보게 되었다. 누가 그어준 것도 있겠고 내가 더 선명하게 덧 그은 것도 있다. 그 선들은 둘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이쪽과 저쪽. 옳고 그름. 너와 나. 그들과 우리. 그 안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이룰 수 없으니 이제는 그 선들을 지워나가야겠다는 글을 썼는데.. 새벽에 묵상을 하며 그 선들이 한편으로는 나를 지키는 방편들이었다는 걸 알았다. 넘어가지 않았고 넘어오는 걸 경계했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이었다. 이제 그 선들을 지워간다면 상처받는 일들이 더 많아지겠지.. 그 선들을 분별해서 남겨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모두 지워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 선들의 이름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