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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둔다. 아이가 불편하다고 힘이 든다고 속이 상한다고 말을 꺼낸다. 듣다가 자꾸 아이를 올바른 생각,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려든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이야기 하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의 입에서 다시는 엄마랑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근데 대안이 없다. 엄마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나마 마음을 터놓을 곳도 엄마이다. 왜 그냥 들어주지 못하는가. 나를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내가 아는 나의 약점. 지나친 걱정과 염려. 불안이 쩌렁쩌렁 울려서였다. 나처럼 살고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냥 두는 힘이 필요하다.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계속 무엇인가 하는, 그게 허용되는 시간이 있다. 때가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 때에는 그냥..
웃으며 불안을 이야기 하기. 고3말. 어제는 수업시간에 두 명이 학교에 왔다며 저녁부터 내일은 자기가 아플 예정이라며 학교를 못간다고 한다. 그래? 했더니 그런걸로 알고 있으라며. 그래. 했더니 이런 저런 이유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괜찮아. 안가도 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러다 내가 쨉을 날렸다. "너 누구랑 싸우니?" 왠일로 순순히 "나랑 싸우지."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 입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누가 이겼어? "불안이가 이겼지."하며 씩 웃길래 아쉬워했더니 깔깔거린다. 딱 자기가 마음 먹은 어제 학교에서 지나치게 떨어진 출석률을 끌어 올리려 공지가 나온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아이가 학교가는 소리에도 나와보지 않았다. 마주치면 짜증만 내는 아이와 감정이 상하는 것이라도 막아보려고. 그런데 오늘 서로 ..
속아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학교 앞 판촉에 넘어가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지를 엄마를 졸라 샀다. 정말 첫 장부터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지였다. 일년을 구독했는데 비닐도 뜯지 않고 쌓여가는 문제지는 다 야근을 해가며 일하는 부모님의 피 같은 돈이었다. 대학생 때도 학교 앞 봉고차에 타서 역기로 써도 될 만큼 무거운 경제학사전을 샀다. 역시 한 장도 읽지 않고 그대로 비싼 쓰레기가 되었다. 비닐도 뜯지 않은 문제지와 한 장도 펼치지 않은 사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일까? 그 물건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을 나에게 속은 것일까?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속아서 쓸모가 없는 물건을 내가 벌지..
할머니의 주머니 할머니의 주머니는 나를 향해 열린 적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뭐라도 손에 쥐어주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비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손으로 입히고 키우고 게다가 일찍 아버지를 여윈 손녀에게 주고도 주고도 모자라셨을것이다. 할머니는 아버지 있는 내가 달갑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 고생하는데 상고가서 돈 벌라고 하셨던 말은 우리 아버지를 위한다기 보다는 너도 아버지 없는 딸처럼 살아라로 들렸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내가 태어났을때 가장 크게 한 번 열렸던 것 같다. 그 때 나에게 '복덩이'라고 하셨다고.. 할머니의 주머니가 보드라운 빨간 벨벳의 금실을 두른 주머니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주머니는 나에게도 열렸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인내 인내의 길에 선다는 것. 다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주는 모든 유익을 인정함에도 머뭇거리게 되는 길이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는 길. 자기를 알지 못하고 달려드는 사나움에도 저항하지 않는 길.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내어놓아야 하는 길. 명백하게 밝혀진 잘못 뒤에도 있는 속사정을 알아주고. 내가 알게 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일도 비밀로 만들어 주고. 내 편에선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사람의 슬픔도 이해하고. 비난후에 해 주는 밥도 먹고. 나를 험담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인사하는. 안면몰수를 당하고도 부탁을 들어주고. 책임은 다 지지만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양도하는. 다 걸어와서 결말을 아는 길도 다시 함께 가는. 그러면서 넓어지고 깊어지고 조용해지는 인내의 길... 이 길에..
걱정으로만 사랑해서 미안해 밤에 막내가 이불에 쉬를 했다. "엄마 쉬가 묻었어" "어 그래" 하고 일어나서 화장실을 데리고 갔다 와서 옷을 갈아입히고 재웠다. 막내를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는 순간 큰아이에게 내질렀던 소리들이 갑자기 귀를 울렸다. 그랬다. 모두에게 더 없이 좋은 사람이 그 아이에게만 무서운 눈을 뜨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니 불안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중적인 부모가 더 나쁘다. 이런 밤, 잠이 오지 않으며 자책에 휩싸인다. 나쁜 엄마다. 그 목소리에 대답한다. 그냥 엄마라고. ....... 걱정이다. 나의 사랑의 방식이 걱정이다. 걱정으로 밖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걱정으로 사랑을 말한다. 조심해. 항상 조심해.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 걱정밖에 없으니 세상에서 내 목숨 만큼 사..
결심 대신 스콘 오전 수업 마치고 점심시간 도서관으로 향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온 카톡에 대답을 하고 났는데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스콘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지 않았는데.. 남편을 바라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나 아니면 아침부터 쌀 씻어 밥하는 수고를 누가 알아준다고. 나 때문이 아닌 것처럼 늦잠 자는 막내딸, 엄마 살에 붙어있어야 자는 공주 아침 잠 설치지 말라고 아침 밥을 해 주는 남편이다. 그리고 또 내 점심을 챙겨다 놓았다. 다 세심하게 알아주어야 하는데 어떨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만다. 그럴 때 서운하겠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결심을 내려놓고 스콘을 먹으련다.
울며 안기다.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부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첫째 아이 후 겪었던 유산이 떠오른다. 혼자 품었다 혼자 떠나보낸 아이이다. 내 생애 가장 춥고 서러운 기억이다. 하혈을 하며 누워있어 몸을 뒤척이기조차 어려웠다. 첫째는 최대한 멀리 있게 되었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쉬어야 된다는 이유였을까. 울며 안기고 싶었다. "너 그때 그 아이 낳았으면 큰일났어. 내가 지금 말은 못하지만 다 보여주셔서 나는 다 알어." 라는 말은 나로 그 때 이야기를 더 이상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게 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아무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을테니. 그렇게 나는 하나님과도 멀어졌었다. 약 2년정도의 시간이었을거다. 나는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