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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아이가 같은 교회를 다녔다. 학교에서는 나를 모른 척 하는 했고 나도 그렇게 했다. 교회에서는 집에도 왕래하는 사이였다. 예배가 마치면 항상 그 아이 데려다 주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항상 데려다 주었다. 얼핏 스치는 기억에 예쁜 아이들은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생각도 있었던 듯 하다. 그 아이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말도 못 걸 아이와 이야기하며 걷는 길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 친구와 둘이 걷는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배가 아파서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 말은 못하고 오늘은 나 먼저 집으로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안 된다고 자기를 데려다 주고 가라고 했다. 우리 집을 한참 지나 그 아이를 데려다 주고 오는..
부끄러운 엄마 "우리 딸 생일이에요. 생일잔치에 초대해요." " 아. 네. 축하드려요. 가야죠.^^ 언제예요?" "이번 주 일요일이에요" "네 . 알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카톡으로 날짜와 시간이 찍힌 초대장이 와 있다. 그 날은 바로 우리 딸 생일이었다. 날짜만 기억하고 있는 엄마와 그 요일에 딸을 위한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 물론 우리 딸은 어디에 가도 내 옆에만 있다. 친구하고 놀기만 하면 운다. 초대하는 엄마도 우리 딸이 사람 많은 곳에서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괜찮을 지 물었다. 그 땐 그것때문에 잠깐 고민도 되었지만 지금은 완전 다른 차원의 고민이 든다. 내 딸도 그날이 생일이라는 것을 알려야할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수 있다. 그럼 생일선물을 주면서 실은 그날 우리 딸 생일이라 ..
종이장판 위의 집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검소해야만 했던 부모님은 이사할 집에 종이장판을 직접 붙이셨다. 그렇게 깔린 노란 종이장판은 네모반듯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도 안계시고 남동생도 놀러나가 혼자인 집에서 나는 책을 꺼내든다. 해가 제일 잘드는 창문 가까운 종이장판 한 칸을 내 집으로 삼는다. 큰 방에 딸린 부엌 하나 집이어서인지 내가 어려서였는지 방은 넓었다. 그래도 그 한 칸만 이 내 집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작은 배개랑 책 몇권을 가져다 두고는 그 네모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기로 하고 웅크려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한 칸 안에서 삐져 나가지 않으려 긴장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다 조금 지나면 내 집은 두 칸이 되기도 했다. 어스름하게 저녁이 되어도 불을 켜지 않았다. 책이 나를 잡고 있기도 했..
억울함 지나가는 아이에게 말을 건 이유는 아이의 표정이 뭔가 좋지 않아서였다.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도 없이 바로 말을 건넸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 아이가 지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말 걸지 말라는 것이 거슬렸다.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여 말을 건네는 것과 건네지 않는 것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내가 시작한 말을 제지 당한 것에 발끈한 것이다. 더 파고 들자면 "그래서 내가 말 걸어주는 거야."라고 계속했으면 끝날 일을 제지당한 채로 말을 못한 것이다. 그 후에 나온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누가 있든 아랑곳 없이 기분 상했음을 나에게 말과 표정과 눈빛으로 쏟아냈다. 순간 내 얼굴은 굳어졌고 대화는 끊어졌다. 어색함을 이기기 힘들어하는 다른 이가 말을 시작했고 나도 그 주제에 동참했..
끊어진 관계 다시 잇기- 래리 크랩 오래 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책이었다. 몇 번을 꺼내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끝까지 읽은 기억이 없다. 언니의 소개로 다시 꺼내들었다. 중년에 맞딱드린 인생의 위기를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주해내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받은 사람한테 우리가 취하는 행동은 대개 물러서거나(retreat) 혼내거나(reprove) 딴 데 맡기는(refer) 것이다.’ p65 이 세가지를 당하고 싶지 않아서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러서는 사람을 보면 서글프고 혼내는 사람을 마주하면 분노가 일어나고 다른데 맡겨버리려 하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나? 무엇보다 혼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쓰려 했는데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면 혼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처..
고마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뛰어온 아이가 선물이라며 주었다. 미안한 건 주고 가버린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공책을 두 장이나 써서 접은 종이꽃에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매일이 부끄럽다. 감정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강의를 기억하면서도.. 작고 예쁜 아이들을 향한 내 안에 복잡한 감정이 부끄럽다. 나를 지나서 아이들에게 가야 하는데 내가 참 쉽지 않다. 다시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는 것 처럼 들으려 한다. 감정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아버지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우리에 대해서..
무시 방학 중인 둘째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뭐가 안 맞았는지 점심 먹고 들어가자해도 계속 집에 가겠다고 하는 아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하고 둘이 있는 시간을 불편해하는 걸 보며 또 다른 좌절을 느꼈다.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하자 아이는 더 심하게 집에 빨리 가자고 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계획을 버리고 택시를 잡았다. 흥정을 싫어하는 나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타는 편인데. 거기서부터 꼬인 것 같다. 그냥 타니 왠지 자기가 적게 불렀다고 느꼈는지 출발하자마자 가서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내려버리고 싶었지만 비가 오고 있고 아이는 비 맞기 싫다고 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오자 다시 시작이다. 이런 저런 말을 덧 붙이고 지명을 바꾸고 하며 멀다고 불평을 한다. 옆에 있던 둘째..
일인용 아들과 아빠가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효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6학년 둘째가 묻는다. "효도가 뭔데" "응 효도란 말이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도 안되지만 이런 저런 바람을 털어놓는다. "아빠는 캠핑카 만들어줘.. 일인용으로.." 내가 그냥 넘어갈 일 없다. "일인용?" "일인용으로 두 개 만들면 되잖아" 그 때는 넘어갔다. 근데 내 마음에서 넘어가지지 않았나보다.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 분이 그런다. "나도. 일인용" 그 분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럴 거 같다고. 그리고 내 남편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일인용. 농담과 실수에 진심이 담길 수 있다. 외로움을 지켜야 할 영역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외로움을 내가 다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