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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같은 여성인 것 나보다 열살 쯤 어리다는 것 헤어디자이너였다는 것 참 예뻤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이름. 한 2년 정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모가 부탁 하셨거든요. 이모는 조카의 아픔을 많이 슬퍼하셨어요. 그리고 오늘 당신이 더는 고통이 쫓아가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는 담담해서 안타까운 연락을 받았어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잠시도 혼자있지 못하는 세 살 난 저의 딸이 손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네요. 자식이 세 살이나 서른이나 엄마 마음은 같을 텐데 오늘 당신의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신을 보내드리며 짧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서로 마지막 인사도 나눌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냥 보내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요. 저를 위한 ..
오랫만이야 6.0 등허리가 좌우로 움직여 번뜩 잠에서 깼다. 일어나 앉았는데도 잠자리가, 방이, 집이 좌우로 흔들흔들 한다. 남편도 벌떡 일어나고 옆에 자고 있던 막내를 안고 휘청휘청 마루로 나왔다. "나가야 되는 거 아냐?" " 멈추는 거 같아." 하는 중 다행히 멈췄다. 여진이 오려나, 애들을 깨워 데리고 나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무일 없었다. 오랫만이었다. 밖으로 나가야 하나 고민했던 것은. 역시 6.0 이었다. 5.0쯤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왔지?" "어. 온거 같아." 정도로 마무리 된다. 지진을 맞으면 몸이 지진계가 된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대충 몇 정도인지 알게 된다. 오랫만에 만난 느낌은 '나 여기 있어' '어. 맞어. 너 거기 있지' 딱 이정도이다. 지금은. 근데 막상 흔들리는 동안에는 어떠했..
공부 안하는 모범생? 학교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는 잠 안자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주로 이런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뭘할까? 나중에 어디에 있게 될까? 늘 앞자리에 앉았는데 가사 시간에 한 번 공책에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은 가사시간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 정말 그건 아니었지만 내 행동을 달리 변호할 자격도 없는 순간이었다. 화가 많이 나 보이셨다. 한 동안 크고 예쁜 눈으로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반항기 없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신 것 같았다. 선생님에게 가장 크게 혼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숙제 안해가서 종아리를 맞았던 수학시간보다도. 남편이 가수 누구 아냐고 묻는다. 팝송도 모..
고마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이제 운동화를 신어야겠죠. 하며 슬리퍼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길래 그럼. 그래야지. 위에가 좀 추워요. 하길래 그래 이불도 얇겠다. 이거 이불 가져가서 덮어라고 말하고 보따리를 푸는데 갑자기 겨울코트가 되어서 니 앞에 떨어지네.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리는 큰 웃음소리를 끝으로 꿈에서 깼어. 그렇게 갔다고 듣고 울지도 못했어. 한 두 달쯤 지났을 때야 우리 서로 붙잡고 울었다. 너에 대해서는 영영 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고마워. 그냥 이 말이 하고 싶네. 꿈에서 얼굴 보여주고 그렇게 밝게 웃어줘서. 고마워. 미안하다는 말에 미안하다고 하고 가줘서. 고마워. 고맙다고 하고 가줘서. 고맙다.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한국갈 때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이들 충치치료다. 워낙 겁이 많은 아이라 소리도 많이 지르고 발버둥도 많이 친다. 할인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간 터라 안그래도 맘이 그런데 아이는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 달래고 달래며 겨우 진료를 받고 있는 중 돌아볼 수 밖에 없는 정도의 담배냄새와 함께 희뿌옇고 푸른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들어오신다. 치통을 제공했던 어금니를 뽑고 나가시려는 아저씨에게 간호사가 임플란트하시려면 언제까지는 오셔야 한다고 친절히 안내를 드린다. 아저씨는 빤히 간호사를 쳐다보다 천장을 향해 "하.." 를 남기고 나가셨다. 아저씨의 차림에 관계없이 다음 치료를 안내한 간호사는 대견하다. 겪어보니 차림이 초라하다해서 치료방법도 이야기 해주지 않는게 더 무서운거다. 그래서 아..
유명한 것들을 피하다가는. 어릴 때 부터 유행을 피하는 고집이 있었다. 왜 그런게 생겼을까. 유행을 쫒기 위해 머리핀 하나라도 사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내 용돈에는 회수권이 포함되어 있어 며칠을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시험이 끝난 날 아이들과의 떡볶이 회식에 낄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유행은 도무지 내가 쫒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가랑이 찢어져도 닿을 수 없다면 내 편에서 유행을 거절하는 게 정신건강에 유익했을 것이다. 이게 습관이었다가 어느새 내가 되어버렸는지 베스트셀러가 그렇게 싫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때도 사서근처는 건너뛰고 저 안에 가서 책을 골라들었다. 최근 베스트셀러 한 권을 읽고 '베스트셀러는 이유가 있는 거구나'. 누구나 하는 생각을 마흔이 셋이나 넘어야 하는 나는 못난 건지 살만해 진건지. 어제는 박완서..
내가 엄마를 데리고 가야지. 산책을 하던 큰 애가 옆에 오더니 그런다. "엄마 나 어릴 때 엄마랑 같이 시내가서 이런 가게들 구경했던 거 생각나. 근데 나 그때는 그런데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어. 왜 그랬나 몰라. 지금은 엄마랑 가고 싶어. 근데 갈 수가 없네." 그 말을 들으니 떠오른다.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있어 구두를 하나 사야했고 애들 겨울에 입을 복실복실한 잠옷바지를 사러 시내를 갔었다. 큰 애를 데리고 갔는데 잠깐 가게에 들어가면 손을 붙잡고 "엄마. 빨리 나가자." 하는 말로 계속 졸랐었다. 그 때 물어보았을 때는 엄마랑 다니면 걸어다니고 버스타야해서 싫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따라 나서곤 했던 큰 아이였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때는 몰랐고 이해 할 수 없었던 마음이 들린다. 큰 애는 나를 닮아 겁이 많은 ..
곰 세마리의 위로 자려고 누우니 막내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다. 내 팔로 자기 몸을 두르고 눈을 맞춘다. 행복한 순간이다. 샘을 내듯이 마음이 걱정을 토해낸다. 다음 달이면 세 번째 생일인데 아직도 제대로 하는 말은 아빠, 엄마 정도이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컵을 가져오고 밖에 나가고 싶으면 신발을 들고 온다. 여섯 살이 돼서야 문장으로 말을 했던 둘째를 이미 키워보았다. 그래도 둘째는 자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분명히 있었다. "아따" 그런데 막내는 그런 말이 없다. 자기 전에 소리를 질러댔던 것은 매일 자던 낮잠을 건너뛴 탓이겠지만. 그 눈을 바라보다가 꼭 껴안았다가 우리 집은 곰 다섯마리이지만 곰 세마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아빠" 깜짝 놀랐지만 노래를 계속했다. "엄마"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