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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 day!!! 우리 집은 큰길에 있어서 창을 열면 길거리 풍경이 다 보이는데 어제저녁 즈음에 봉쇄 시작하고 거의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야채를 파는 손수레에 모두 마스크를 하고는 있었지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식료품 상점들에도 쉴 새 없이 사람이 다녀갔다. 남편에게 “다들 봉쇄가 너무 길어져서 힘든지 많이도 나와다 닌다” 했더니 “ 내일이 새해잖아.” 맞다. 여기는 오늘 2077년 새해를 맞았다. 달력도 숫자도 날짜도 그 고유함을 지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강력히 깨닫게 되었지만 세상이 정말 하나인 것 같이 느껴지는 이 시대에 또 아주 외 길로만 갈 수는 없으니 둘 다 사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1월1일도 새해로 즐기고 매년 달라지지만 4월 중순..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 아무도 묻지 않을 때 나는 안다. 누군가가 물어와 설명을 하려고 하면 모른다' -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이 글을 인용하는 거면 참 좋겠는데 여의치 않아 그냥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가져왔다. '시간'에 대해 정의하는 고충을 표현했다 한다. 어찌나 맞는 말인지. 나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려니 모르겠다. 어디서 조금 막힌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모르겠다. 봉쇄 19일째 아이들에게 어느정도 자유롭게 노트북사용을 허락해주었다. 방학이라 기대도 있었을텐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큰 아이는 게임을 하다가 뭐가 잘 안 된다고 한숨을 쉬며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전 부터 이어진 짜증에 물었다. 게임을 재밌으려..
집. 4th. 이 집에서 나는 아주 힘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단은 이 집에서 내가 겪은 일들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 하나만 적기로 한다. 둘째가 될 뻔했던 아기를 잃었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유산. 정말 어이없이 그냥 '유산'이라고 한다. 많은 엄마들이 경험한 일이라 그래서 그런건가. 어느 날 갑자기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 마음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였다. 본능인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한 두 줄로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너무 기뻤는데 다음날 부터 갈색혈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불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곤 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에 안심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더니 며칠이 지나도 멈추지를 않..
싱크로율 99.99% 1. 그러니까 형아. 내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잖아.하하하. 둘째가 말하길래 깜짝 놀라 물었다. 너가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 우와. 알지. 왜 몰라. 효니야. 등잔이 뭐야? 몰라. 2. 아들이 만화 주인공같은 목소리를 흉내내며 떠들길래 "엄마도 어렸을 때 성우하고 싶었는데.." "엄마 나도 나도 성우 하고싶어" "나니. 성우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아니 몰라" 형제의 싱크로율 99.99%다. 기질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선호도 다르고 체질도 다르고 여튼 다 다른데 둘째가 한 말이 너무 재밌어서 적어두었었는데 예전에 큰 애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걸 찾았다. 적어두길 참 잘했다.
집. 3rd. 이 집을 구하게 된 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집을 구한다는 걸 아는 언니가 브로커(알음알음 번호를 구해야 하는 부동산 중개인)도 소개해주시고 집도 같이 보러 다녀주셨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날 집을 보러 브로커를 따라갔는데 도착한 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아이를 안고 업고 재우며 창문으로 보던 회색 집. 우리 집에서 매일 보던 그 집이었다. 친근함 때문이었을까. 아주 큰 세퍼트와 더 무섭게 짖어대는 제페니즈 스피츠가 있었는데도 그 집으로 결정했다. 지은지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외국인에게 집을 주려고 비워놓은 1층이었는데 이게 함정이었다. 아끼는 집에 예민하신 주인 아주머니는 주로 마당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셨는데 커튼이 열려있을 때 보셨는지 집 안에 신발장을 놓는 일에도 잔소리를..
집. 2nd. 글을 쓰니 좀 가벼워진다. 기억이란 이름으로 내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이 많이 무거웠던 것이다. 두 번째 집은 벽이 하얀 집이었다. 여기는 집 안팎을 페인트로 칠하기 때문에 색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큰 애는 여기서 낳았다. 아이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네팔리라고 놀린다고 한다. 네팔아이들이 한국애를 네팔아이라고 놀린다는거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여기서 출산을 하다니. 그건 정말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은 내가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것이니 한국이건 어디건 그 고통의 크기는 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주변에 여기서 아이를 낳고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후에 다시 여기서 출산하신 분이 계시다. 대단하신 분이다. 출산의 고통을 의술..
오랜만에 반가워. 남사친이던 남편과 처음 둘만 만나게 된 건 어느날 내가 탁 트인 곳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남편이 올림픽공원을 가자고 한 날이다. 답답했던 그 날 난 정말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완벽했다. 서울에서 돈 많이 안 들이고 빌딩에 가려지지 않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그 하늘 아래 있는 것 같다. 그날의 하늘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넓어지고 깊어지면 나처럼 평안하고 고요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많은 일들을 지나 여기에 왔다. 하늘이 아름다워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너무 맑아서 이곳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십여년 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매일 마주했었는데 길이 넓어지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기 시작하고 먼지와 매연이 날리..
내일의 나에게 주는 선물. 생애 첫 블로그를 만들 때 이름을 써넣는 창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썼다.'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볼 때마다 너무 마음에 든다. 딱 내 마음이라.. 무엇을 알게 된다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알고 싶다는 것인가.나에게 묻는다. 읽는다는 것은 내겐 휴식과도 같은 것이다.읽고 있으면 참 좋다. 말씀을 읽고 책을 읽고 뉴스를 읽고 여러 가지 글을 읽는다. 큰 아이에게 자주 했던 미안한 말이 " 엄마 책 좀 보자."였다. 그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고, 지금은 미안하다. 낯선 곳에서 처음 해보는 육아에 지쳐 잠시라도 틈이 나면 무언가를 읽으며 쉬고 싶었다.지금도 막내가 낮잠이 들면 나는 책을 든다. 그런데 며칠 전 블로그를 열고 글 쓰기를 시작하고 부터는 막내가 잠이 들면 글을 쓴다. 실은 글을 쓰는 것도 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