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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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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옷을 입은 그대 둘째를 데려다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가 많이 오는 큰 길 앞에서 한 3학년 쯤 되어보이는 오빠랑 1학년 같은 여동생이 손을 잡고 서 있다. 신호등이 없는 길이니 내가 건네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갔다. 골목에서 나온 아가씨가 우산 아래로 아이들을 불러 들인다. 천천히 안전하게 아이들을 건네준다. 길을 건넌 후에 아이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기 길로 간다. 아가씨도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자기 길을 간다. 무심하지만 당연하게 인정을 베푸는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이 사람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음이 복되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큰 오늘 하루의 시작이다. 빨간 옷을 입은 그대의 몸과 영혼이 우리 주 안에서 평안하기를!
우리 집 도어락 "애들 올 시간 되지 않았어? " " 괜찮아 우리 집 도어락 달았어" "아~ 그래~" "돌리면 열리는 도어락" 내가 설명하고 한참 웃었다. 자기네 집은 버튼 누르는 도어락이란다. 2시반이면 집에 오는 큰 아들이 가끔 열쇠를 두고 가 땀에 젖은 교복과 구두를 벗지 못하고 문 밖에서 기다리기를 몇 번 우리 집 최적의 도어락 시스템을 한국에서 도입했다. 이 정도면 여기서 얼마나 최첨단이냐 하며 우리 가족 모두 만족하고 있었는데 누구는 진짜 버튼 누르는 도어락들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고 말이다. 살짝 틀어진 우리 집 문에는 달 수도 없는 도어락에 집착할 일이 없다. 우리 문짝에 딱 맞는 이 정도면 될 일이다.
내가 닫아놓은 문 앞에서 기침감기가 심해 며칠을 앓다가 겨우 회복해 수업을 갔다. 여전히 기침을 하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선생님이 교실에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업시간. 몇 몇은 일어서 돌아다니고 시장바닥보다 시끄러운 낯설 것도 없는 시간이었는데. 칠판에 붙여두었던 교재를 떼고 가방을 챙겨 교실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그 문을 마주 바라보고 서 있다. 무슨 마음인가. 다른 선생님 수업 시간도 이렇게 시끄러울까? 내가 아이들을 잘 컨트롤 하지 못하나? 수업이 재미가 없나? 질문만 꼬리를 문다. 복잡한 마음으로 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아이들 눈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라 정의하며 마음을 다 잡지만.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실패한 것 같다. 아이들을 참아내는 인내심에서. 즐거운 수업시간을 ..
수명연장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잠바 지퍼가 고장났다고 했다. 선물로 받은지 10년이 다 되어 소매 부분이 너덜너덜해져 나로서는 진즉에 버리고 싶었던 잠바였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나는 버리자고 했다. 남편은 아쉬워하며 계속 지퍼를 올려본다. 가만히 있을까..고민하다 결국 고쳐주기로 한다. 이 방법은 내가 몇년 전 시장에 가방가게 아저씨에게 가방지퍼를 고치러 갔을 때 아저씨의 기술을 어깨넘어 보고 배운것이다. 지퍼 올리는 부분을 펜치로 살짝 눌러주면 벌어지던 지퍼는 꼭 맞아 잘 올라가게 된다. 이걸로 버리고 싶던 잠바를 몇 년을 더 보아야 할 것 같다.
시작도 못한 애도 암 선고를 받는 꿈으로 잠을 깼다. 갑자기 이 무슨 꿈인지 그 분께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주에 한국에서 손님이 오셔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하다 딱 한 번 울었는데 우리를 이곳으로 오라 하시고 암으로 돌아가신 선임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우연히 내가 모임에서 "겨울이 무섭다" 고 말한 기억이 났다. 말하고 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한참 생각했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언니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새로운 나라의 겨울을 아직 적응하지 못한 1월 초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2년 모자란 20년 만에 겨울이 무서운 나를 알았다. 추워서 만이 아니었다. 겨울 없는 나라에 살고 싶은 마음이. 첫 아이 임신중이었다..
발바닥이 뜨겁게 아야어여, 가나다라를 열심히 가르치고 집에 돌아오면 세 아이가 벗어둔 옷들을 모아 지난 번 세탁 때 받아둔 물을 다시 세탁기에 부어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군데군데 청소를 한다. 다 마치고 앉으면 발바닥이 뜨겁다. 부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벌겋다. 가슴이 뜨거운 것보다 머리가 뜨거운 것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의미이다. 생각만 많고 행동은 미미한 나이기에. 생각속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내는 나라서 머리가 터져 나가도 겉으로는 평안한 나이다. 이런 내가 발바닥이 뜨거움을 느끼고 있다. 수학을 50점 이상 받아본 적이 없던 나를 수학 선생님으로 세우셨고 제2외국어였던 불어의 인사말 이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하신다. 내가 약하여 넘어져 있던 그곳에서 일으키시고 ..
안제나 나이가 들어 그런가 이제 누구를 만나 몇년을 세면 십년은 기본으로 넘어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지만 친숙한 사람. 아이들의 귀를 잡아당기며 혼내는 무서운 선생님이지만 우리에게는 귀한 열매인 사람이다. 더 좋은 자리에 얼마든지 갈 수 있었는데도 우리와 있어준 마음을 나눈 사람이다. 기따와 안제나를 만나도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소하게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의 징검다리를 놓는다. 수업중에 아이들이 웅성대며 창밖을 보라고 손짓한다. 내다보니 안제나가 케리어를 끌고 가고 있다. 지금 가는 길이란다. 꼭 다시 보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목이 메어 손만 흔들었다. 안제나도 손만 흔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 다시 만나자 했는데 내 맘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기따는 학교에서 가르치던 때 ..
산도 좋다. 지평선을 좋아한다. 2001년 인도의 지평선이 주던 안정감이 더럽고 시끄러운 열차속 그 어스름함을 그리워하게 한다. 수평선은 그다지 안정감을 주지 않는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중년 여자에게 바다는 걸을 수 없는 곳이니... 산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오를 생각이 없으니.그런데 산도 참 좋았구나! 참 좋았다. 산은 내려다 볼 수 있을 때 좋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