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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뛰어온 아이가 선물이라며 주었다. 미안한 건 주고 가버린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공책을 두 장이나 써서 접은 종이꽃에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매일이 부끄럽다. 감정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강의를 기억하면서도.. 작고 예쁜 아이들을 향한 내 안에 복잡한 감정이 부끄럽다. 나를 지나서 아이들에게 가야 하는데 내가 참 쉽지 않다. 다시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는 것 처럼 들으려 한다. 감정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아버지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우리에 대해서..
무시 방학 중인 둘째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뭐가 안 맞았는지 점심 먹고 들어가자해도 계속 집에 가겠다고 하는 아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하고 둘이 있는 시간을 불편해하는 걸 보며 또 다른 좌절을 느꼈다.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하자 아이는 더 심하게 집에 빨리 가자고 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계획을 버리고 택시를 잡았다. 흥정을 싫어하는 나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타는 편인데. 거기서부터 꼬인 것 같다. 그냥 타니 왠지 자기가 적게 불렀다고 느꼈는지 출발하자마자 가서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내려버리고 싶었지만 비가 오고 있고 아이는 비 맞기 싫다고 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오자 다시 시작이다. 이런 저런 말을 덧 붙이고 지명을 바꾸고 하며 멀다고 불평을 한다. 옆에 있던 둘째..
일인용 아들과 아빠가 신나서 이야기를 한다. 효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6학년 둘째가 묻는다. "효도가 뭔데" "응 효도란 말이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도 안되지만 이런 저런 바람을 털어놓는다. "아빠는 캠핑카 만들어줘.. 일인용으로.." 내가 그냥 넘어갈 일 없다. "일인용?" "일인용으로 두 개 만들면 되잖아" 그 때는 넘어갔다. 근데 내 마음에서 넘어가지지 않았나보다.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 분이 그런다. "나도. 일인용" 그 분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럴 거 같다고. 그리고 내 남편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일인용. 농담과 실수에 진심이 담길 수 있다. 외로움을 지켜야 할 영역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외로움을 내가 다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100만원 짜리 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미 잘 그려서도 아니었다. 그저 미술 시간에 스케치한 숙제로 A+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드디어 찾았나 싶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상담을 하셨고 미술 시키려면 100만원도 넘게 든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커서 돈 벌어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후 혼자서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을 보면 여고생에게 스쳐지나간 얕은 바램이었을 것이다. 거절 당하는 순간. 그 이유가 돈이 되는 순간. 그림 그리는 일은 비싸고 나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나이 마흔 셋에 코로나 시국에 '사이버 대학'에 편입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자격증 하나를 더 따기 위해 듣고 싶지 않은 과목을 들어야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과를 둘러보게 되었..
발바닥이 뜨겁게 아야어여, 가나다라를 열심히 가르치고 집에 돌아오면 세 아이가 벗어둔 옷들을 모아 지난 번 세탁 때 받아둔 물을 다시 세탁기에 부어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군데군데 청소를 한다. 다 마치고 앉으면 발바닥이 뜨겁다. 부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벌겋다. 가슴이 뜨거운 것보다 머리가 뜨거운 것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의미이다. 생각만 많고 행동은 미미한 나이기에. 생각속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내는 나라서 머리가 터져 나가도 겉으로는 평안한 나이다. 이런 내가 발바닥이 뜨거움을 느끼고 있다. 수학을 50점 이상 받아본 적이 없던 나를 수학 선생님으로 세우셨고 제2외국어였던 불어의 인사말 이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하신다. 내가 약하여 넘어져 있던 그곳에서 일으키시고 ..
엄마 화났어? 방에 있는 아들에게 아빠 지금 나가시니까 같이 갈거면 가라고 거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아들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엄마 화 안났는데?" 무슨 소리인가 돌아보니 남편이 아들이 엄마가 화난 거 아니냐고 물었단다. 갑자기? 맥락도 없이? 의아하게 쳐다보니 아들은 왜 엄마한테 말했냐며 아빠한테 뭐라 한다. 그러더니 자기는 조금이라도 큰 소리나 퉁명스러운 말투에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화 안났다고 몇 번를 확인시키고 남편과 아들은 외출을 했다. 맥락도 없이 화내는 엄마였나? 생각하니 억울하다. 사춘기 들어선 아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산다고 혼자 삼킨 감정들이 한 보따리인데 말이다. 아이의 모든 문제는 엄마를 향한 화살표가 된다. 덩치가 아빠만한 아이가 말소리 하나에 예민하다니. 곱씹다 보면 작은 아이일..
안제나 나이가 들어 그런가 이제 누구를 만나 몇년을 세면 십년은 기본으로 넘어간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지만 친숙한 사람. 아이들의 귀를 잡아당기며 혼내는 무서운 선생님이지만 우리에게는 귀한 열매인 사람이다. 더 좋은 자리에 얼마든지 갈 수 있었는데도 우리와 있어준 마음을 나눈 사람이다. 기따와 안제나를 만나도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소하게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의 징검다리를 놓는다. 수업중에 아이들이 웅성대며 창밖을 보라고 손짓한다. 내다보니 안제나가 케리어를 끌고 가고 있다. 지금 가는 길이란다. 꼭 다시 보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목이 메어 손만 흔들었다. 안제나도 손만 흔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 다시 만나자 했는데 내 맘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기따는 학교에서 가르치던 때 ..
무슨 이유로 비가 퍼붓는 밤. 물이 차서 오토바이가 잠기지 않을지 창밖을 보는데 개 한마리가 비를 피하지 않고 어느 집 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처량하다기 보다 의미있어 보이는 개의 사진을 찍어두었다. 보통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개들이 대부분인데 비가 쏟아붓는 길 한복판에서 그 비를 다 맞으면서도 저렇게 꼿꼿하다. 밥을 기다린다 한들 저 비에는 누구도 밥을 주러 나서지 않을텐데. 저 집에서 개에게 밥을 주던 사람은 지금 저 개의 모습을 보고 있을까. 보았다면 비옷을 입고서라도 밥을 주었겠지. 여기 사람들은 길거리 개에게도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밥을 챙겨준다. 말하자면 저 개는 집 밖에서 집을 지켜주는 개이다. 동네에 여러 집이 키우며 길목을 지키는 개. 처음엔 그런 방식이 무책임해 보였다. 지금은 굶으면 배가 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