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85)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야 사춘기를 늦게 시작한 큰 애와 달리 둘째는 13살 사춘기이다. 모든 일에 시큰둥,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겠어요", "상관없어요" 가 돌아온다. 큰 애한테는 답답해서 화를 낸 적이 많았는데 둘째를 보면 울고 싶다. 내일이면 6학년 수업을 시작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시작도 전에 미간을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요?", "왜요?", "뭐요?" 하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다시 태도를 논했다. 태도, 그놈의 태도를. 최근에 둘째와의 (혹은 나 혼자만의) 갈등을 겪으며 최대한 따뜻하게 조용하게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자기 전에 아이에게 친절히 인사하며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한참 마음을 추스르..
성장통 "그렇게 말하니까 놀러다닌다고 비꼬는 거 같잖아..." 아들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했다. 거리가 멀어서 남편이 데려다 주어야 했다. 시간이 문제였다. 남편은 시간을 바꿔보라고 했다. 아들은 친구들하고 이미 약속한 시간을 바꾸기 위해 연락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중재한다고 끼어든 나에게 아들은 감정을 쏟아낸다. 속상하다는 말이라 듣고 싶지만 말투를 문제삼으며 의도를 오해하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꾹 참았다. 아들을 데리고 온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다. 아들은 나에게 와서 속상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중재를 하다가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심한 말이 나갈 거 같은 입술을 깨물고 남편을 불렀다. "당신이 화 난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내가 중간에서 얘기할 수록 문제가 더 커져" 남편은..
지나가버린 꿈 엄마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었다. 그거 시키려면 100만원도 넘게 들거라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을 듣고 오신 엄마가 "너무 비싸서 안될거 같다. 나중에 니가 돈 벌어서 배워라" 고 미안해 하셨다. 매일 가던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미술학원이 있었는데 계단위를 몇 번 올려다 본게 다였다. 한번 올라가 물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끝을 냈다. 그 당시 나의 여러 꿈들 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졌다. 마흔 다섯에 사이버 대학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고 있다. 코스대로 끝낸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지 않았다. 다른 과의 수업을 다 돌아보고 설레는 과목만 듣기로 결정했다. 과제를 하다가 문득 그림이 나의 지나갔던 꿈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와 지금을 계산해 보니 27년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었을까. 문구점..
혼자만의 전쟁 둘째는 여느날 처럼 짜증을 내며 일어났고 골라준 긴소매 옷을 보더니 “이걸 입으라고요?” 했다. 반팔을 입고 팔을 감싸고 앉아있길래 추우면 잠바입으라 했더니 오만상을 지으며 건네주는 잠바를 받아 입었다. 나가려고 하는 아이의 뒷머리가 너무 엉클어져 있어 머리를 빗겨주니 짜증으로 온 몸을 떨며 나갔다. 막내 일어나기 전에 강의를 들으려고 모니터를 켰다. 강의가 슬플리 없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보다 3년은 빠르게 2차 성징이 시작된 둘째는 5학년에 완연한 사춘기아들이다. 대부분의 대답은 “몰라요”, “상관 없어요”다. 손을 잡으면 빼고 가까이 붙어 걸으려 하면 두 걸음 떨어진다. 큰 아이의 사춘기는 둘째의 사춘기를 대비 하는 백신이 되기에는 너무 약했나 보다. 무방비 상태로 서운하고 서럽다. 막내 태어나..
수치심 - 커트 톰슨[중년에 꼭 만나야 할] 이렇게 읽기 어려운 책이 있었을까? 스무 번 쯤 읽고 나니 드디어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읽지 않고는 읽어지지 않는 중년에는 꼭 만나야 할 수치심이다. 실은 책의 모든 부분을 옮겨 적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한 구절만 뽑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 잡아서 결국 찾아냈다. 수 많은 구절을 적었다가 다 지우고 하나만 남겼다. '인간을 규정짓는 관계적 모티브는 우리가 가능한 한 열심히, 혹은 적어도 지금 하는 것보다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 혹은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옳음에 관한 것도 아니고 권력의 획득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 각각의 모티브(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비전들)는 수치심의 불안의 계략에 빠져든..
순아 순아. 이름만 남겨 놓고 떠난 순이. 너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언제든 얼마든 울 수가 있어졌단다. 너를 닮은 사람이 니가 있던 곳에서 부르는 찬양을 듣는 오늘 드디어 써내려갈 용기가 생겼어. 너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일년이 넘었지만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이름뿐일 정도여서. 너는 그냥 보기만 해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어. 정말 착한 사람. 순박하고 조용하고 말이 없고 맡은 일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 내는 사람. 그런 너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건 다 내 탓이야. 이미 나 먼저 계셨던 두 분의 리더십. 그리고 그 분들께 깊이 연결되어 있어 보였던 너. 안정적이고 충분해 보였던 관계 속에 삐집고 들어갈 마음도 먹지 않았어. 그리고 언제나 조용하게 웃는 너에게 나도 그냥 조용히..
집구석. 아이들이 다시 온라인 수업을 하고 몸이 아프다 보니 집이 엉망진창이다. 그야말로 집구석이다. 한숨쉬듯이 “아. 이 집구석 좀 봐.” 했더니 옆에서 남편은 “왜? 뭐가?” 한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곳이 몸이 피곤하고 예민할 때 참을 수 없이 지저분해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데 문득 사람은 자기가 규칙을 부여하고 그 규칙이 지켜지는 곳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애정을 느끼는 공간은 어디인가? 라는 생각으로 집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없다. 모든 것이 되는대로 놓여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당장 이 집을 떠나야 하면 무엇이 아쉬울까? 이 집 안에 물건들에는 아쉬움이 없다. 다만 이 집에서 바라보는 뒷집 아보카도 나무와 그 뒷편 산으로 지는 저녁 노을, 창문 밖 히말라야 풍경이 그리울 것..
엄마가 저번에.. 이런 숙제 도와주다가 완전 화 냈었죠. 나 그 기억이나. 그랬니? 미안하다. 아네요. 제 기억에 제가 짜증냈어요. 숙제를 도와달라고 부르고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그래. 숙제 봐 주다가 화가 올라올 때가 많았다. 별로 기억하는 게 없다는 둘째는 가끔 이렇게 속을 보인다. 그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마음을 내비치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 서운한 것도 속상한 것도 바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는 아이가 곁을 내 줄 때 진심어린 말을 건네어 그 손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