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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물도 햇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막내를 남편에게 맡기고 이 게임만 끝나면 같이 가자는 첫째를 뒤로 하고 둘째랑만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는데 옆으로 흐르는 개울이 반짝인다. 그냥 흙탕물이 아니고 쓰레기를 품고 흐르는 악취도 더해진 구정물이 햇빛을 만나 반짝반짝 빛난다. 엄마한테 돌아온 둘째에게 "구정물도 반짝이네" 하니까 "햇빛때문이지" 하고 다시 앞서 간다. 그래.햇빛 때문이지.햇빛을 만나면 구정물도 반짝이지. 아니 어떤 물이든 호수이든 바다이든 유리컵에 담긴 물이든 햇빛을 만나면 반짝이지. 중요한 건 물이 아니라 햇빛이지. 구정물의 반짝임이 그 어떤 반짝임보다 아련히 들어온다.
기계가 무섭지 않다. 아빠 공장은 기계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불러도 들리지 않기에 전화벨소리나 초인종 소리는 최대한 크게 설정되어 있다. 기계가까이 가지 말라며 어릴때부터 들은 사고 이야기를 빼더라도 공장에 들어갈때마다 귀는 놀란다. 얼마전의 나였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말을 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잠을 잘 수 없고 위장병이 도질 그런 말이었다. 그러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뭐지? 나 왜 괜찮은 거지? 일기를 적어두고 바라보았다.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았는데, 이제까지의 나를 부정당하는 것이었는데, 신뢰라는게 애초에 없었다는 거 밖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일인데도 괜찮다. 남편은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한다. 말이 내 귀에 들리는 게 다가 아니라면서 그 말이 그 뜻이 아니란다. 저 말은 "말꼬리 잡기 시작..
100점 "당신의 인생은 100점입니다. 이미 2천년 전부터 그렇게 매겨졌습니다. 당신이 걱정하고 낙심할 때도 아프고 약할 때도 당신은 100점입니다." 모임 후에 사이버 대학 기말고사 두 과목을 보아야했다. 시험 전에 100점을 받고 보니 한시름 놓아지는 마음을 보며 알았다. 많이 불안했구나. 몇 주 전 부터 잠도 못자고 배도 아프던 게 시험 때문이었다구? 시험? 그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 때문이 아니라 100점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100점을 받아본 적이 (내 기억에는)없다. 그런데 마흔 중반에 들어간 사이버 대학 시험에서 몇 번 100점을 받았다. 한 번 받고 나니 몰랐던 맛을 알았다고 할까. 100점이 목표가 되니 공부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해지고 배움의 기쁨보다 부담만 커져갔다. 알 수 없..
구구구 열번 째 이사한 이집의 최대 난제는 비둘기이다. 제대로 마감되지 않은 연통을 통해 집안으로 비둘기가 날아들어 혼자 나가지 못하고 집안을 날아다니다 부엌 창문아래 설거지 해 둔 그릇위에 깃털과 똥을 내려두었다. 머리 위로 날아든 비둘기에 놀라 과호흡까지 온 큰애 손을 잡아 끌고 놀고 있던 막내를 들쳐안고 방으로 피해 비둘기는 열지도 못할 문을 잠갔다. 자기도 놀란 비둘기는 남편이 올 때까지 탈출을 위한 절박함으로 온 집을 날어다녔다. 가끔 널어놓은 빨래에도 똥을 싸고 베란다에도 똥을 남겨두는 비둘기들. 창문밖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매일 마주치면서도 그들의 날개짓에 일말의 경외심을 느끼지 않는 나는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 같다. To. 구구구 오늘도 창문 아래서 조용히 잠을 청하는 아이들아. 나는 너희에..
읽기 중독 나의 읽기는 3층에 사시던 주인 아주머니가 반지하 우리 집 마당에 버리려했던 어린이 명작 전집을 던져주면서 시작되었다. 출판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빨간 표지에 하드커버였고 지금 외국서적에 쓰이는 가볍고 누런 종이에 타이핑을 친 듯한 글씨체였다. 아마도 주인아주머니가 샀을 때는 비싸게 주고 샀을 듯 하다.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소공녀, 작은 아씨들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을 가장 좋아했다. 이 세 권은 몇 번 읽었는지 셀 수 없다. 그렇게 시작된 읽기는 어린 나에게 현실(까맣고 못생긴 나, 공부 못하는 나, 가난한 우리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을 선물해 주었다. 부록으로 안경도. 그 후 공식은 물론 비공식 취미도 '독서'가 되었다. 부모님 친구분 집에 가도 아이들하고 놀지 않고 책부터 꺼내 앉았고 ..
중년 친구들을 줌으로 만났다.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 왜 이렇게 힘들지? " "그러게 말이야." " 우리가 힘들 나이가 되었나봐." 나만 아니고 너도. 모두 삶이 딱 버틸 만큼이다. 감사의 계절이니 감사하자고 말하는 애도 짠하다. 나만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 내내 새벽 두시면 깬다. 배가 아픈것도 아니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게 힘이 든다. 지금이다. 아프기 시작한 날로 돌아가본다.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마주하기 두렵다. 그래도 썼다. 중년이 힘든 이유는 부모를 바라보면 수치심이 자녀를 바라보면 죄책감이 나를 비추고 있어서다. 그 두 거울에 내가 나이다. 그 모든게 '나'이다. 나는 그 모두다.
나는 그 모두다. 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오신 날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술상이 차려졌고 시간이 지나며 격해지던 감정이 폭팔해 아빠가 일어나 나가려 하셨다. 엄마는 아빠를 잡으라고 울부짖었다. 실패하면 엄마가 죽을 것 같아 휘젓는 아빠 다리에 달라붙었고 성공했다. 잠이 들었다. 이번엔 아빠의 불안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시장에 가신 엄마를 동네에서 찾아다니며 이집 저집에 나를 들여보냈다. "우리 엄마 여기 있어요?" 20년이 넘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방에서 나를 안고 계시는 주님을 만났고 지금의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렸던 아빠, 엄마가 지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든든하게 계셔주심에 감사하다.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깊은 곳에 잠겨있던 상자가 열렸다. '어떤 불안'은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제 좀 컸나봐" 가면 한 참을 나오지 못하고 뭐라도 사볼까 궁리하던 장난감 가게를 나보다 먼저 나가는 아이를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새벽에 뒤척이다 '나는 그 모두다.' 는 글귀를 만났다. 갑자기 펼쳐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가끔 가는 식당 아래층에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가게가 있다. 한 번 가면 오래도록 기웃거리며 흐트러진 장난감을 정리하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작은 자동차를 굴리기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 날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는 평소처럼 장난감 가게를 들렀다. 남편이 손님과 함께 가고 나랑 둘이 있는데 내 마음이 바빠졌다. 난데없는 재촉은 고집을 불러일으켰다. "너 이렇게 말 안들으면 엄마 갈꺼야"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멀리안가고 장난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