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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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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당신의 인생은 100점입니다. 이미 2천년 전부터 그렇게 매겨졌습니다. 당신이 걱정하고 낙심할 때도 아프고 약할 때도 당신은 100점입니다." 모임 후에 사이버 대학 기말고사 두 과목을 보아야했다. 시험 전에 100점을 받고 보니 한시름 놓아지는 마음을 보며 알았다. 많이 불안했구나. 몇 주 전 부터 잠도 못자고 배도 아프던 게 시험 때문이었다구? 시험? 그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 때문이 아니라 100점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100점을 받아본 적이 (내 기억에는)없다. 그런데 마흔 중반에 들어간 사이버 대학 시험에서 몇 번 100점을 받았다. 한 번 받고 나니 몰랐던 맛을 알았다고 할까. 100점이 목표가 되니 공부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해지고 배움의 기쁨보다 부담만 커져갔다. 알 수 없..
읽기 중독 나의 읽기는 3층에 사시던 주인 아주머니가 반지하 우리 집 마당에 버리려했던 어린이 명작 전집을 던져주면서 시작되었다. 출판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빨간 표지에 하드커버였고 지금 외국서적에 쓰이는 가볍고 누런 종이에 타이핑을 친 듯한 글씨체였다. 아마도 주인아주머니가 샀을 때는 비싸게 주고 샀을 듯 하다.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소공녀, 작은 아씨들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을 가장 좋아했다. 이 세 권은 몇 번 읽었는지 셀 수 없다. 그렇게 시작된 읽기는 어린 나에게 현실(까맣고 못생긴 나, 공부 못하는 나, 가난한 우리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을 선물해 주었다. 부록으로 안경도. 그 후 공식은 물론 비공식 취미도 '독서'가 되었다. 부모님 친구분 집에 가도 아이들하고 놀지 않고 책부터 꺼내 앉았고 ..
중년 친구들을 줌으로 만났다.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 왜 이렇게 힘들지? " "그러게 말이야." " 우리가 힘들 나이가 되었나봐." 나만 아니고 너도. 모두 삶이 딱 버틸 만큼이다. 감사의 계절이니 감사하자고 말하는 애도 짠하다. 나만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 내내 새벽 두시면 깬다. 배가 아픈것도 아니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게 힘이 든다. 지금이다. 아프기 시작한 날로 돌아가본다.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마주하기 두렵다. 그래도 썼다. 중년이 힘든 이유는 부모를 바라보면 수치심이 자녀를 바라보면 죄책감이 나를 비추고 있어서다. 그 두 거울에 내가 나이다. 그 모든게 '나'이다. 나는 그 모두다.
나는 그 모두다. 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오신 날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술상이 차려졌고 시간이 지나며 격해지던 감정이 폭팔해 아빠가 일어나 나가려 하셨다. 엄마는 아빠를 잡으라고 울부짖었다. 실패하면 엄마가 죽을 것 같아 휘젓는 아빠 다리에 달라붙었고 성공했다. 잠이 들었다. 이번엔 아빠의 불안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시장에 가신 엄마를 동네에서 찾아다니며 이집 저집에 나를 들여보냈다. "우리 엄마 여기 있어요?" 20년이 넘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방에서 나를 안고 계시는 주님을 만났고 지금의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렸던 아빠, 엄마가 지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든든하게 계셔주심에 감사하다.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깊은 곳에 잠겨있던 상자가 열렸다. '어떤 불안'은 ..
분홍 욕구 막내 사진은 온통 분홍분홍이다. 물려받아 입힌 옷들도 분홍들이고 선물받은 옷도 분홍이 넘친다. 딸이 그렇게 분홍분홍 하더니 7살 넘어 분홍을 싫어하더라며 어렸을 때 하나라도 더 입힐 걸 하며 아쉬워 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부지런히도 입혔던가? 중2때 똑단발에 분홍 잠바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는 피해야 할 색깔중 하나가 분홍이다. 그래서였을 수도 있고 남동생이 물려 입어야 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릴때는 분홍이 많지 않았던 거 같고 오히려 커서 분홍과 하양 줄무늬 남방을 사입기도 하고 결혼 선물로 받은 분홍티도 떨어질때까지 잘 입었다. '욕구'라는 단어 자체가 불편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더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건 목사님 설교뿐이 아닌 부모님의 삶으로 내게 각인된 메세지이..
애초에 왜 나는 노트를 쓰는 걸까? 나는 말의 속도가 느리다. 천천히 말하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천천히 말해도 실수를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말은 일단 내 입에서 떠나면 상대방의 상황과 형편에 가서 닿아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허니 말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된다. 내 감정이 내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늘 썼다.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썼다. 그날도 노트 한 권을 들고 운동장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썼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알아주면 되니까...'하며 한 바닥을 끄적이고 교실로 돌아갔다. 노트는 써내려가는 동안 나를 가로막지 않아 쓴다. 노트는 나를 불편해하지 않아 쓴다. 노트는 나를 판단하지 않아 쓴다. 노트는 나를 받아주기 때문에 쓴다. 노트는 비밀을 지키기 ..
결국 나. 상황이 되지 않아 참여 할 수 없는 모임이 있었다. 그 때의 마음상태를 따라걸어본다. '이제까지 나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모를 수 있을까? 나는 모임에 진심인 사람인데 내가 못 참석한다는 건 정말 참석할 수 없는 건데..내가 설명한 이유들이 핑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야? 그렇다면 정말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지.' 내 입장에서 서운한 것만 생각하며 나를 옹호하는 자기연민의 늪에 푹 빠져든다. 관계가 개선되기 힘들어 보이는 만큼 깊이 빠져들며 끝까지 가라앉으면 관계를 끝내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늪에 빠져들어가고 있을 때 강한 팔이 나를 꺼내 늪 옆에 앉혀놓는다. 진흙범벅이 되어 있는 내가 나를 향해 비난을 던진다. '그러니까 바보같이 왜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했어? 알아서 잘..
좋은 결정 남들은 결정인지도 알지 못할 결정을 하고는 늘 그랬듯이 마음이 불안하다. 남편에게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장황하게 나눈 후에 물었다. "잘 한 걸까? 잘 못한 걸까?" "우리가 결과를 알 순 없지. 결국 '좋은 결정'이라는 건 자신이 정하는 거지." 나에게 좋은 결정이란 당연히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때만 충족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결과는 '나의 결정'이외에도 많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어있는 것인데 결과가 좋을 때만 결정을 잘 한 것이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어제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이라는 건 결과를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과 태도만을 정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결정이 잘 될 것인지 잘못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