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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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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둔다. 아이가 불편하다고 힘이 든다고 속이 상한다고 말을 꺼낸다. 듣다가 자꾸 아이를 올바른 생각,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려든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이야기 하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의 입에서 다시는 엄마랑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근데 대안이 없다. 엄마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나마 마음을 터놓을 곳도 엄마이다. 왜 그냥 들어주지 못하는가. 나를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내가 아는 나의 약점. 지나친 걱정과 염려. 불안이 쩌렁쩌렁 울려서였다. 나처럼 살고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냥 두는 힘이 필요하다.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계속 무엇인가 하는, 그게 허용되는 시간이 있다. 때가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 때에는 그냥..
웃으며 불안을 이야기 하기. 고3말. 어제는 수업시간에 두 명이 학교에 왔다며 저녁부터 내일은 자기가 아플 예정이라며 학교를 못간다고 한다. 그래? 했더니 그런걸로 알고 있으라며. 그래. 했더니 이런 저런 이유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괜찮아. 안가도 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러다 내가 쨉을 날렸다. "너 누구랑 싸우니?" 왠일로 순순히 "나랑 싸우지."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 입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누가 이겼어? "불안이가 이겼지."하며 씩 웃길래 아쉬워했더니 깔깔거린다. 딱 자기가 마음 먹은 어제 학교에서 지나치게 떨어진 출석률을 끌어 올리려 공지가 나온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아이가 학교가는 소리에도 나와보지 않았다. 마주치면 짜증만 내는 아이와 감정이 상하는 것이라도 막아보려고. 그런데 오늘 서로 ..
걱정으로만 사랑해서 미안해 밤에 막내가 이불에 쉬를 했다. "엄마 쉬가 묻었어" "어 그래" 하고 일어나서 화장실을 데리고 갔다 와서 옷을 갈아입히고 재웠다. 막내를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는 순간 큰아이에게 내질렀던 소리들이 갑자기 귀를 울렸다. 그랬다. 모두에게 더 없이 좋은 사람이 그 아이에게만 무서운 눈을 뜨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니 불안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중적인 부모가 더 나쁘다. 이런 밤, 잠이 오지 않으며 자책에 휩싸인다. 나쁜 엄마다. 그 목소리에 대답한다. 그냥 엄마라고. ....... 걱정이다. 나의 사랑의 방식이 걱정이다. 걱정으로 밖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걱정으로 사랑을 말한다. 조심해. 항상 조심해.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 걱정밖에 없으니 세상에서 내 목숨 만큼 사..
우리 둘째 필요한 것도 없고 괜찮치 않은 것도 없는 우리 둘째. 형은 신발을 받았고 동생은 크레파스 세트를 받았는데 둘째는 쓰던 것과 개봉한 적 있는 것을 받았다. 둘째 것을 잊어버리고 와서 가져온 짐들 중에서 챙겨 주신 것이다. 둘째 것으로 사오지 않은 신발을 하나 받아왔는데 역시나 발에 맞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한 번 신었지만 아주 좋은 다른 것을 주신다 했다. 둘째는 상관이 없다. 둘째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내 것도 없구나. 나는 상관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기는 하지. 필요한 게 없어보이는 사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나도 둘째처럼 그냥 상관없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 사람이라 이렇게 쓰며 살아야 하나보다. 둘째야 너는 정말 괜찮은 거니? 아무..
시간이 다가온다. 기침을 하며 등교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학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가겠다며 길을 나선다. 애들 방 창 밖으로 골목길로 걸어가는 아들을 본다. 어디서도 눈에 뜨일 만큼 키가 커버린 아들. 이제 내년이면 엄마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본다. 두 마음이 서로 다툰다. '혼자 살아갈 준비를 더 철저히 시켜야지.' 와 '앞으로 혼자 이겨낼 시간을 지탱하게 더 많이 안아줘야지.' 로 나뉘어서 말이다. '눈 감으면 코 배어간다.'는 말은 타향으로 떠나는 자녀들의 안전을 바라던 어머니의 당부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내 마음이 그렇다. 겁을 주어 보내고 싶지 않다. 이미 겁이 많은 아이다. 경계심도 나 못지 않다. 걱정하는 엄마, 염려하는 엄마로 남겨지고 싶지 않다. 믿어주는 엄마, 응원..
자기 확신 "엄마. 이거 맞아?" "응. 맞아. 음. 맞는 거 같아. 아빠한테 물어봐" '맞아' 가 '맞는 거 같아'가 되고 '아빠한테 물어봐'가 반복되는 가운데 아이들은 엄마말을 건너띄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 나를 의심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한다. 엄마를 본다. 이렇게 할껄. 그 때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오지 말껄. 그렇게 할 껄 잘못했다. ㅇㅇ한테 물어봐. 기다려봐. 먼저 물어보고 하자. 물어보길 잘했다. 남편의 말을 듣는다. 이미 지나간 거.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더는 말하지 마. 어떻게 하고 싶은 지 말해봐.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그거 아까도 이야기 했어. 나를 본다. 두 번 말하는 습관이 있다. 비슷한 순간이 오면..
죄똥하지만... 막내는 여전히 떼떼거리는 귀여운 말을 하는 중이다. 몇 주전부터는 골라주는 옷도 입지 않으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죄똥하지만 공주 옷으로 해주떼요~" "그럼 너가 골라와" 주변에서 물려받은 옷이 대부분인 서랍에서 그나마 레이스 달린, 그나마 분홍색인 옷을 찾아온다. 플라스틱 목걸이하고 머리핀 꽂았나 확인하고서야 유치원으로 나선 공주님 눈 앞에서 진짜 마차를 만났다. 울 막내 공주님은 오토바이를 탔지만 언젠가 놀이공원에라도 가서 탈 지 모르는 마차랑 사진 한 컷 찍어주었다. 말보고 신나고 마차보고 신난 우리 공주님!
멸치맛 "멸치 먹어봤니?" 엄마랑 통화하는데 물으신다. 응? 멸치? 저번에 아들이 한국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가 보내주신 이것저것 중에 멸치가 있었나보다. 시원찮은 대답에 안 먹어본 걸 알아차리시고 먹어보라고 맛있다고 하신다. 말을 꺼내신 이유는 냉동실 정리하다가 손질해둔 멸치를 더 발견하시고는 이것까지 보냈어야 하는데..했던 엄마의 아쉬움이다. 또 며칠을 흘려보내고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냉동실을 휘저어 멸치를 찾아냈다. 꺼내어 큰 애 책상에 덜어주었다. 하나를 입에 넣더니 더 놓고 가란다. 고추장은 없냐 묻는데 고추장은 없다. 담백하고 맛있단다. 하나 주워 먹어보니 뼈가 다 발라져 있다. 눈도 침침하신 엄마는 멀리 사는 딸 생각에 작은 멸치에서 머리 떼고 똥(내장) 떼고 뼈까지 다 발라내셨다. 엄마 말씀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