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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무시


방학 중인 둘째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뭐가 안 맞았는지 점심 먹고 들어가자해도 계속 집에 가겠다고 하는 아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하고 둘이 있는 시간을 불편해하는 걸 보며 또 다른 좌절을 느꼈다. 비가 조금 내리기 시작하자 아이는 더 심하게 집에 빨리 가자고 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계획을 버리고 택시를 잡았다.

흥정을 싫어하는 나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냥 타는 편인데. 거기서부터 꼬인 것 같다. 그냥 타니 왠지 자기가 적게 불렀다고 느꼈는지 출발하자마자 가서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내려버리고 싶었지만 비가 오고 있고 아이는 비 맞기 싫다고 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오자 다시 시작이다. 이런 저런 말을 덧 붙이고 지명을 바꾸고 하며 멀다고 불평을 한다. 옆에 있던 둘째가 “엄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라고 해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약속한 돈을 주었다. 더 달라고 한다. 그냥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돈을 주며 말했다. 돈은 줄건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적반하장으로 내가 지명을 속여서 말했단다. 길가 상점 간판에 적힌주소를 읽어보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냥 내렸다. 택시가 가고 나서 집을 향해 걸었다. 눈알이 벌겋던 택시기사가 무서워졌다. 겁이 많아서 이런 일이 있고나면 경계심이 폭팔하는 나이면서 왜 그 한마디를 참지 못했을까. 무시다. 불안을 이기고 무시 당했다는 느낌이 그 한마디를 하게 했다.

마음의 불편함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할 말이 있다며 부엌으로 부른다.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발표를 하는데 자기가 너무 가만히 있지 못하더라고 친구들이 말해주어 자기도 알았다고 했다.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몸을 흔들며 이야기 하는 아이를 본다.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아이를 보며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 주었다. 그 나이에 자기를 아는 것도 대단하다고.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폭팔하고 나면 불안이 요동을 치는 나도 괜찮은가? 나는 평안을 바라는가 편안을 바라는가. 내가 이래서 택시 타기 싫었는데.라는 말이 둘째는 불편했겠지.나의 편안을 위해 중얼거렸던 말들이 내 귀에 들려온다. 다시는 택시를 타지 않을거라고 다짐하는 나에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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