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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

시작도 못한 애도


암 선고를 받는 꿈으로 잠을 깼다. 갑자기 이 무슨 꿈인지 그 분께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주에 한국에서 손님이 오셔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하다 딱 한 번 울었는데 우리를 이곳으로 오라 하시고 암으로 돌아가신 선임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우연히 내가 모임에서 "겨울이 무섭다" 고 말한 기억이 났다. 말하고 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한참 생각했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언니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새로운 나라의 겨울을 아직 적응하지 못한 1월 초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2년 모자란 20년 만에 겨울이 무서운 나를 알았다. 추워서 만이 아니었다. 겨울 없는 나라에 살고 싶은 마음이.

첫 아이 임신중이었다. 갑자기 주인을 잃은 물건들에 둘러싸였다. 반짇고리를 열면 손때묻은 헝겊 쪼가리들이 죽음을 떠올리게 했고 냉장고 안에 드시다 남기신 무엿이 죽음을 가리켰다.

불안에 흔들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울지 못했다. 함께한 시간이 채 15일이 되지 않는 분의 모든 것을 이어받았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신다는 유언장을 받았다. 불과 몇 주 전에도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나는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그 시간의 '빛'에만 집중해서 버텨온 시간을 돌려 '어두움'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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