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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귀요미 둘이 인사를 한다. 한 손에 사탕봉지가 들려있다. 생일인거다. 여기 아이들은 생일날 사탕을 사 가지고 학교에 와서 친구들이며 선생님들께 나눠준다. 뿌듯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두 개나 꺼내주고 간다. 생일 축하한다! 너무 많이 축하해! 니가 태어나서 우리가 만나고 내가 이렇게 사탕을 받는구나!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앞으로의 너의 모든 날을 축복해! 사탕 나눠주는 일이 바쁜지 얼른 돌아 나가서 사진도 못 찍었다. 가진 것이 많아야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천사가 주고 간 사탕 두 개를 남겨본다.
이별을 고하는 고통. 그 해 겨울 남편이 안식년에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다. 결정된 일을 말하기까지 마음이 죄인이다. 일 년동안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해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있는다. 이 곳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단다. 외국인들은 언젠가 떠난다고. 그렇지만 일 년 후엔 돌아오는데. 우리는 꼭 돌아올건데. 네팔 엄마. 그래 나에게도 네팔엄마가 있었다.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보고 내가 너의 네팔 엄마라고 했다. 물론 나는 엄마라 부르지 않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고모라고 불렀다. 아침 일찍 집에 와 차를 마시고 가고. 내 서툰 네팔어를 고쳐주며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미루고 미루다 이야기를 꺼낸 날이었다. 여느 때 처럼 둥그렇게 모여 앉는데. 누군가 그랬다. 우리를 부르고 기다리자고. 나..
씨부리며 씨 뿌리는 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정산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도 그 대상이었다. 그 와중에 내 마음은 또 나를 피해자의 자리에 세워 두었다. '씨 뿌리는 중이었다.' 는 것을 깨달았다. 돌려 받아야 할 것도 아니고 대신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닌 씨가 뿌려지는 중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적어내려가다가 오타가 났다. 씨부리는 자. 고운 마음으로 축복의 말을 더해 기도하며 뿌리는 씨도. 모난 마음으로 짜증을 내며 마지 못해 뿌리는 씨도. 일단 뿌려지고 나면 내 손을 떠난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뿌리고 싶지만 늘상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시126:5-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
그냥 둔다. 아이가 불편하다고 힘이 든다고 속이 상한다고 말을 꺼낸다. 듣다가 자꾸 아이를 올바른 생각,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려든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이야기 하기 일쑤였다. 결국 아이의 입에서 다시는 엄마랑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근데 대안이 없다. 엄마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나마 마음을 터놓을 곳도 엄마이다. 왜 그냥 들어주지 못하는가. 나를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내가 아는 나의 약점. 지나친 걱정과 염려. 불안이 쩌렁쩌렁 울려서였다. 나처럼 살고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냥 두는 힘이 필요하다.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계속 무엇인가 하는, 그게 허용되는 시간이 있다. 때가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 때에는 그냥..
웃으며 불안을 이야기 하기. 고3말. 어제는 수업시간에 두 명만 학교에 왔다며 내일은 자기가 아플 예정이라 학교를 못간다고 한다. 그래? 했더니 그런걸로 알고 있으라며. 그래. 했더니 이런 저런 이유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괜찮아. 안가도 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러다 내가 쨉을 날렸다. "너 누구랑 싸우니?" 왠일로 순순히 "나랑 싸우지."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 입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누가 이겼어? "불안이가 이겼지."하며 씩 웃길래 아쉬워했더니 깔깔거린다. 딱 자기가 마음 먹은 어제, 학교에서 지나치게 떨어진 출석률을 끌어 올리려 공지가 나온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아이가 학교가는 소리에도 나와보지 않았다. 마주치면 짜증만 내는 아이와 감정이 상하는 것이라도 막아보려고. 그런데 오늘 서로 웃으며 불..
속아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학교 앞 판촉에 넘어가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지를 엄마를 졸라 샀다. 정말 첫 장부터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지였다. 일년을 구독했는데 비닐도 뜯지 않고 쌓여가는 문제지는 다 야근을 해가며 일하는 부모님의 피 같은 돈이었다. 대학생 때도 학교 앞 봉고차에 타서 역기로 써도 될 만큼 무거운 경제학사전을 샀다. 역시 한 장도 읽지 않고 그대로 비싼 쓰레기가 되었다. 비닐도 뜯지 않은 문제지와 한 장도 펼치지 않은 사전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일까? 그 물건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을 나에게 속은 것일까?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속아서 쓸모가 없는 물건을 내가 벌지..
할머니의 주머니 할머니의 주머니는 나를 향해 열린 적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뭐라도 손에 쥐어주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비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손으로 입히고 키우고 게다가 일찍 아버지를 여윈 손녀에게 주고도 주고도 모자라셨을것이다. 할머니는 아버지 있는 내가 달갑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 고생하는데 상고가서 돈 벌라고 하셨던 말은 우리 아버지를 위한다기 보다는 너도 아버지 없는 딸처럼 살아라로 들렸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내가 태어났을때 가장 크게 한 번 열렸던 것 같다. 그 때 나에게 '복덩이'라고 하셨다고.. 할머니의 주머니가 보드라운 빨간 벨벳의 금실을 두른 주머니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주머니는 나에게도 열렸을 거라고 믿기로 한다.
인내 인내의 길에 선다는 것. 다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주는 모든 유익을 인정함에도 머뭇거리게 되는 길이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는 길. 자기를 알지 못하고 달려드는 사나움에도 저항하지 않는 길.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내어놓아야 하는 길. 명백하게 밝혀진 잘못 뒤에도 있는 속사정을 알아주고. 내가 알게 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일도 비밀로 만들어 주고. 내 편에선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사람의 슬픔도 이해하고. 비난후에 해 주는 밥도 먹고. 나를 험담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인사하는. 안면몰수를 당하고도 부탁을 들어주고. 책임은 다 지지만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양도하는. 다 걸어와서 결말을 아는 길도 다시 함께 가는. 그러면서 넓어지고 깊어지고 조용해지는 인내의 길... 이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