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75)
다시 여자. 돌 맞을 이야기지만 고양이를 싫어한다. 개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적인 것. 본능적인 것. 내가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꿈으로 만난 머리와 꼬리, 껍질만 남겨지고 몸통을 빼앗긴 검은 고양이가 불쌍해 눈물이 났다. 개들이 배가 고파 그랬다니.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고양이는 꿈에서 여성의 에너지라고 한다. 다시 여자. 나는 내가 여자인 것이 싫다. '싫었다'고 쓰고 싶지만 여전히 싫다. 조심해야 해서 싫고 참아야 해서 싫다. 누가 그러라고 하냐. 그러면 안전할 거 라고 내가 붙잡고 있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한다. 지하철에서 부딪친 남자의 '미친년'소리가 그렇게 말한다. 마음은 내가 마주하든 피하든 나를 전복시킬 것이다. 몇 번이고. 나를 집어삼켰다가 뱉어낼 것이다. '여자인 나'로 나를 향한 항해를..
빨간 옷을 입은 그대 둘째를 데려다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가 많이 오는 큰 길 앞에서 한 3학년 쯤 되어보이는 오빠랑 1학년 같은 여동생이 손을 잡고 서 있다. 신호등이 없는 길이니 내가 건네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갔다. 골목에서 나온 아가씨가 우산 아래로 아이들을 불러 들인다. 천천히 안전하게 아이들을 건네준다. 길을 건넌 후에 아이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기 길로 간다. 아가씨도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자기 길을 간다. 무심하지만 당연하게 인정을 베푸는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이 사람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음이 복되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큰 오늘 하루의 시작이다. 빨간 옷을 입은 그대의 몸과 영혼이 우리 주 안에서 평안하기를!
옳다.. 열심히 하다가 열심히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미워한 적이 있다.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다가 내 길을 준비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 열심이 나를 부추긴 것인지 내가 그 열심을 붙잡은 것인지 알 수 없이 미쳐서 돌아갔던 적이 있다. 열심으로 한 일들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함께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 열심으로 인해 질투의 대상이 되어 그 질투심에 희생양이 되었었다. 내가 바보 같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했는지 후회했다. 그 시간동안 만들어진 나를 부인하며 어디서든 너무 열심히 해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나를 모른척하고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그러니까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메시아 신드롬 있냐? 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니가 뭐라고? ..
날아가기 전에_ 꿈 시험을 보러갔다. 대학 강의실 같은 곳인데 과목은 영어듣기 시험이다. 몇 문제는 노래를 듣고 맞추는 것이었다. 시험이 시작하는데 발 바닥에 떨어진 내 물건들이 많았다. 발로 대충 밀어서 의자 밑으로 안 보이게 밀어넣었다. 메모지가 있길래 여기에 메모를 하며 문제를 풀어도 되냐고 젊은 여성 감독관에게 물었다. 그러라며 허락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보고 있는데 먼저 나와 기분좋게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학교에 높은 관계자라 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경계심이 들었다. 난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고 학교에서 제공한 깨끗한 메모지를 감독관에게 먼저 보여주고 썼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인 상대방은 나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놀라워..
우리 둘째 필요한 것도 없고 괜찮치 않은 것도 없는 우리 둘째. 형은 신발을 받았고 동생은 크레파스 세트를 받았는데 둘째는 쓰던 것과 개봉한 적 있는 것을 받았다. 둘째 것을 잊어버리고 와서 가져온 짐들 중에서 챙겨 주신 것이다. 둘째 것으로 사오지 않은 신발을 하나 받아왔는데 역시나 발에 맞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한 번 신었지만 아주 좋은 다른 것을 주신다 했다. 둘째는 상관이 없다. 둘째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내 것도 없구나. 나는 상관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기는 하지. 필요한 게 없어보이는 사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나도 둘째처럼 그냥 상관없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 사람이라 이렇게 쓰며 살아야 하나보다. 둘째야 너는 정말 괜찮은 거니? 아무..
시간이 다가온다. 기침을 하며 등교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학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가겠다며 길을 나선다. 애들 방 창 밖으로 골목길로 걸어가는 아들을 본다. 어디서도 눈에 뜨일 만큼 키가 커버린 아들. 이제 내년이면 엄마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본다. 두 마음이 서로 다툰다. '혼자 살아갈 준비를 더 철저히 시켜야지.' 와 '앞으로 혼자 이겨낼 시간을 지탱하게 더 많이 안아줘야지.' 로 나뉘어서 말이다. '눈 감으면 코 배어간다.'는 말은 타향으로 떠나는 자녀들의 안전을 바라던 어머니의 당부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내 마음이 그렇다. 겁을 주어 보내고 싶지 않다. 이미 겁이 많은 아이다. 경계심도 나 못지 않다. 걱정하는 엄마, 염려하는 엄마로 남겨지고 싶지 않다. 믿어주는 엄마, 응원..
충분하다. 많이 먹어 속은 부대끼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그런 느낌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래서 더 먹으면 체하고 배 아프면서. 결국 최소한으로 밖에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인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늘 한 발 늦는다. 뭐가 부족하지. 왜 이렇게 허하지. 채워지지가 않는 거지. 이 정도로는 너무 모자란다. 배가 고픈게 아니었다. 이번 달에 적게 들어왔다. 이미 들어간 것도 많고 또 더 들어가야 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적었다. 서운했다. 그래서 당장 쓸 돈이 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냥 확 넉넉히 채워지지 않은 가난의 느낌. 모자라는 마음. 부족한 듯한 상태. 남루하고 부끄러운 너무나 내 것이라 익숙한 감정들이라 그게 그냥 나였다. 이것도 보내기가 아까웠나. 버리기가 아깝고 쓰기가 아깝..
떠나고 싶다. 2018년 이 즈음이다. 비자로 큰 문제가 생겨 이 곳에서 떠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새벽 창 밖을 바라보며 '과연 내가 이 풍경 바라보지 못하고 살 수 있을까?' 하며 무너져 내렸다. 모든 감정을 일단 멈춤으로 해 두고 해결을 위해 정신없이 이사를 하고 남편은 두 아들과 함께 모든 이삿짐을 날랐다. 나는 돌이 안된 막내를 돌보며 짐 정리를 해야했다. 다행히 문제는 해결 되었고 우리는 이 곳에 더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삶의 터전에서 뽑혀 나갈 뻔한 일을 겪고 나니 강제로 한국으로 나와야 했던 분들에 대한 나의 부족했던 공감이 심히 죄송스러웠다. 그 후로 5년. 시작은 그 때 부터였던 거 같다. 이 땅에서 뽑혀져 내팽겨질 것 같은 일을 겪은 후. 멈춰두고 가두고 방치해 버린 그 감정으로 인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