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낼 수 없는 편지

너무 긴장해서 미안.


“너무 무섭다.” 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은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나중에 울어버렸다. 다른 사람을 무섭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그런 오해를 받은 것이 억울해서. 이미 그 안에서 경찰같은 역할을 하고 맡고 있던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던 때여서 그 말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선배 앞에서 나는 나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니고 우리를 위해 하는 것 뿐인데.. 하소연 하며 울었다.

선배는 ‘무섭다‘ 라는 단어가 왜 너를 울게 하는지 물었는데 나는 그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연한 걸. 그냥 나는 그게 오해라 억울하다고만 했다. 누군가들을 통해 나를 보았다. 함께 쓰는 공간은 언제든 불쑥 누군가 들어 오고 예기치 않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순발력’이라는 게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나는 내가 만나러 온 사람 말고 다른 이를 마주치는 경우, 친밀도에 따라 상대방이 느낄 어색함은 거의 “이 사람이 화가 났나?” 하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대화를 위한 편안한 미소를 장착하지도 못하는 긴장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눈은 크게 뜨며 어떻게 하지를 말할 것이고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부자연스럽고 목소리는 크지만 떨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머리를 풀어헤치거나 책을 높이 들어 아니면 고개를 돌려서라도 나의 긴장상태를 상대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친밀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지만 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어 상대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토록 긴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 공간 안에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다시 말해 이렇게 약하다는 걸 감추고 싶은 본능이 나에게 말 걸지 말라는 굳은 얼굴과 딱딱한 말투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렇게 다른 이를 통해 나를 보았다. 나도 순간 “화가났나?” 생각했다. 20년도 더 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무서워요.”

그래 무서웠겠다. 너는 강해보이는 아이였는데 니가 나보고 무섭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는 좋아했어야 하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사자가 어린양과 뛰어 놀고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나라를 막고 서 있는 내가 슬퍼서 였을까. 그 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다. 너무 지나치게,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긴장해서 미안. 우리의 관계가 어려웠던 데 분명 나의 잘못이 있었어. 너는 참 솔직했고 나는 그렇지 못해서 미안했어. 어쩌면 너도 나 같은 아이였을텐데…





'보낼 수 없는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아  (0) 202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