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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자기를 아파하는 그에게 아니라고..그렇지 않다고.. 당신은 너무나 빛나고..예쁘기는 물론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얼마만큼 가서 닿을지 알 수 없어도 힘주어 한 글자 한 글자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넘치려는 순간..그 마음 그대로 나에게 말해주라는 인도를 받았다. 이 마음? 이 충만한 마음? 이렇게 사랑으로 넘치는 말을? 이렇게 따뜻한 말을?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것을 나에게 가져오라는 갑작스런 요청에 멍해졌다. 좋은 선물을 받으면 포장을 뜯는 순간 박스에 붙은 테잎을 떼고 그 안에 선물을 꺼내들어 지문을 남기게 되는 순간까지 고민하게 된다. 두었다가 꼭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목소리가 내 안에 울린다. 나에게 연결된 값..
내게로 온 선물. connect 라는 단어를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몰랐다. 모르고도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했으니 기적이다. 졸업 후 국제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는데 그 세미나 주제가 connect 여서 외우지 않을 수 없었다. 5박6일동안 진행되던 불편하기만 했던 자리에서 얻은 몇 가지 중 하나다. 대규모 집회나 단톡방 속에서 방황하는, 남편과 세 아이가 집에 있어도 책 속에 들어가면 연결이 끊기는 아내고 엄마다. 그런 나에게 연결이 선물로 왔다. 다른 이가 아닌 나에게 완벽한 시간에 도착했다. 주신 이에게 감사하며 베푸는 이에게 감사하며 준비된 나에게도 고마워하며 누릴 참이다. 감추고 싶은 것을 하나 내어놓고 글을 시작하니 훨씬 편안하다. 이 길에 발을 내딯는다.
어떻게 하면 전달 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보며 한참 답을 쓸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깐 기도하고 오랫동안 울 궁리를 한다. 슬픈 노래를 듣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한다. 어제는 세 시간 넘게 울었다. 다행히 눈물이 잘 나와주어 고맙다. 나를 살리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다. 글로 나를 흘려보내는 일이 아직도 너무 쉽지 않다. 글쓰는 내가 어색하고 답답하다. 우는 내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살 길을 찾다보니 찾아졌다. '숨결이 바람될 때'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울 수 있게 되니 한결 낫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울고 있었다. 울어야 할 일이 많아서 우는 것은 당연하고 슬픈 마음을 일으켜서라도 더 울고 있다. 슬픔을 거대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에 가두어 두어 꿈에서나 가끔 그곳에 빠지고는 했는데 이제 나는 그 수영장 물을 ..
전문가의 손길을 잘라내다. 질끈 묶은 머리가 일상이다 보니 미용실에 갈 일이 없다. 가려면야 한국분이 하시는 곳도 있지만 락다운이 아니더라도 가 본 적이 없다. 미용사님과의 대화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마음에 안들어도 표현을 못하니 한국에서도 연례행사 정도였다. 우연히 현지사람들 교육을 위해 오신 전문가의 손길을 누렸다. 너무 길어졌을 때는 소중한 끝 부분을 고무줄로 묶어 따로 빼고 나머지 머리카락을 죄다 앞으로 당겨 이마앞에 바짝 묶어 자르면 전문가의 손길은 계속 유지가 되어 보기가 괜찮았다. 숱은 없지만 허리까지 긴 머리가 어제 저녁에는 참을 수 없었다. 전문가의 손길을 포함하여 고무줄로 묶고 부엌가위로 단번에 잘라버렸다. 몇 그람 차이가 없을텐데도 가볍다. 시원했다. 말리고 나니 섭섭함이 밀려든다. 이런일이 가끔있다. 후회할..
내 친구 앤.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았다.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빙 돌아갔는데 그 공간이 뒷마당이기도 했다. 3층에 사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책 볼 사람이 있으면 주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딸이 볼거라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주인아주머니는 뒷베란다를 통해 책꾸러미를 마당으로 던지셨다. 빨간머리 앤과 함께 소공녀, 작은아씨들까지 내 어린시절의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노란종이의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밖이 환할 때 읽기 시작해 방이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고 읽어 안경을 일찍 쓰게 되었다. 앤이 메튜의 마차를 타고 달리던 길. 다이애나와 걷던 길들을 나도 걸었다. 앤이 느끼던 절망과 기쁨, 부끄러움과 두려움, 거침없이 쏟아내는 감정들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이사오기 몇 주 전인 걸로 기억한..
시작했더니. 작년 코로나 락다운기간에 바리캉을 장만했다. 남편은 반 곱슬이라 가위로도 충분한데 아들 둘 은 직모여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잘라놓고 나면 잘못 자른 부분만 계속 보이고 누구라도 머리잘랐네..하고 뒷말이 없으면 마음이 쓰이지만 길어지는 락다운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 동영상을 찾아보며 집게핀을 사며 계속 잘라왔다. 덥다는 말에 바리캉을 들었고 마음에 든다는 아들의 칭찬덕분인지 그사이 실력이 늘었는지 좀 괜찮아 보인다. 아이들 뒤통수를 바라보고 혼자 마음고생하며 보냈던 일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으니 뭐든지 시작하자는 마음이 든다. 오늘 시작하면 1일이 되는 거고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언젠가라는 오늘에 서 있을 날도 꿈꿔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언니가 심어준 씨앗으로 시작한 블로..
고마웠어 산소. 이번 락다운 시작하며 '2차 유행'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조만간 '3차유행'이 닥칠거라는 비관적인 뉴스도 끊이질 않는다. 확진자 2명으로 시작했던 1차 락다운과는 달리 오늘도 일일확진자는 7천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가까이에 확진받고 회복한 지인도 있고 확진받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도 있다. 어제는 계시던 병원에서 산소통이 비었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했다는 소식에 큰일이다 했는데 다행히 산소를 구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인도에서 산소통을 가로채는 사진을 볼 때도 그랬는데 산소통 얘기가 나오니까 가슴이 묵직하고 기분이 영 이상하다. 답답함에 물을 마셔도 개운치가 않아서 가슴을 두드리다가 알아졌다. 그 때 생각이 나는구나. 심한 기침이 일주일을 넘어가는데 열이 없다고 버티다가 쓰러진 날이었다. 초록색 천이..
안식. 최근 몇 해 동안 읽지 못한 내가 사랑하는 책을 들었다. 큰 애는 지금도 엄마가 책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엄마. 책 좀 읽자" 가 상처가 되어서일까. 그냥 그런 성향일까. 책을 읽고 있으면 와서 말을 걸고 자기를 보고 책을 그만 보라고 한다. 둘째때는 육아에 지쳐 책을 읽을 생각도 못했는데 셋째와는 책도 읽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공부도 한다. 짜투리 시간을 사용하는 노하우도 생겼고 전에 없던 스마트 폰이 큰 도움이 되었다. 허나 종이책 넘기는 맛을 잊을 순 없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곳에 있어준 문장들에게 그리움과 고마움을 표하며 읽어내려간다. 감동이 물 밀듯 밀려오는 순간 막내가 나타나 책을 덮어버린다. "네 책도 가져와 같이 읽자" 했더니 후딱 뛰어가 자기 책을 가져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