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5) 썸네일형 리스트형 행복하니? 대학 졸업 후 월 60을 받으며 학원강사를 했었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원 자리에 있던 보습학원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끝나고 오기 전 까지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원장님 남편 일을 도왔다. 원장님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출근하는 학원이고 아이들은 오고 싶은 시간에 와서 가고 싶을 때 집에 갔다.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는 정도였다. 집에서 걸어서 3분거리여서, 일하는 직원이 나 뿐이라서, 월급이 적은 만큼 원하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 곳을 선택했다.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때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는 내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은행에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딱 반 매월 30만원 짜리 적금을 들게 하셨다. 그 돈으로 결혼식도 올리고 치과치료도 하게 .. 조각배 나는 작고 부서지기 쉬운 초라한 조각배이다. 거친 폭풍우는 고사하고 가느다란 빗방울도 피하지 못할 조각배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다행히 바다에서는 모든 배가 흔들린다. 흔들림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줄의 연결되어 항해를 계속 해 나가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작고 초라한 조각배이지만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다른 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몫의 노를 저으며 흔들릴 때는 흔들리고 바람이 불 때는 작은 돛을 펴고 함께 할 것이다. 비가 좀 내리지만 오늘은 여유롭다. 헝거 - 록산 게이 '나는 여기에 내 심장을 펼쳐 보였고 여기에 그 심장이 남긴 자국이 남았다.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 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유가 주는 해방감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무엇에 허기졌는지, 그리고 내 진실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창조하게 했는지가 있다.' - p339 12살 작은 여자 아이의 비포와 애프터는 비극적이다.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던 가해자와 그 무리들에게 당한 성폭행으로 인해 어린아이의 세상은 끝이 났고 그 일을 비밀로 끌어안는 순간부터 빠지기 시작한 늪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만 남아버렸다. 그 발버둥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범생으로 사는 것으로 시작해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하얀 백지 하얀 백지가 눈을 내리깔고 나를 쳐다본다. 이 새하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뭘 쓰려고? 또 뭘 적어서 나를 얼룩지게 하려는 거야. 가만히 있어. 조용히 해. 쓰지 마. 니가 뭐라고? 뭐가 대단해서 글을 쓰겠다고? 대단해서가 아니야. 소중해서이지. 나도 내가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냐. 미울 때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거든 미안할 때도 있고 안쓰러울 때도 있거든. 그래도 소중해. 그래서 쓸 거야. 엄마를 찾아. 자다 깼다.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부엌으로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는 듯이 계속 걸어갔다. 빨간 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 자동차들은 불을 켜고 달리고 있다. 자동차들이 빗속을 달리는 것 같이 보이는 건 내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얘야. 너 혼자. 어디 가니?" "엄마 찾으러요." "엄마가 어디 갔는데?" "몰라요" "어머. 너 길을 잃어버렸구나. 경찰서에 데려다줘야겠네. 근데. 아줌마가 지금 교회 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시간이라. 너 아줌마 따라 교회 가자. 그리고 내가 경찰서에 데려다줄게." "네" 엄마를 찾아가던 내게 말을 건 모르는 아주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아주머니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처음에는 그 옆에 앉아 .. 어땠을까.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라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서 있다는 걸 가까이 가서야 알아차렸고 움츠러드는 나를 알아보았는지 한 아이가 뒤로 다가와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오던 다른 남자아이도 한 번 더 머리를 잡아당기고 도망쳤다. 덩달아 남자아이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지만 그 아이들을 쫓아간 게 아니라 집으로 뛰어갔다.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따라온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우리 집을 따라온 아이들이 있을 거고 내가 집 밖에 나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또 괴롭힐 것이다. 무서웠다. 눈물을 멈추지 않..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쓰기는 써야 하는데..쓸 수 없어서 쓰지 못하고 있었다... 몇년 동안 중보기도때마다 제일 먼저 이름을 부르던 분이 수요일 아침에 소천하셨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의 마침표를 찍은 날이리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모든 이들을 연결하는 마음의 고통도 이제는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리라. 그러나 두 아이가 마음에 고스란히 남는다. 엄마를 잃은 딸과 엄마를 잃은 아들이. 다음날 더 아프고 다음 날 더 입을 닫게 된다. 오늘은 그 아이들의 이름도 되뇌이지 못하겠다. 눈물과 진실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며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애도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을 보았으니... 슬픔을 쓰는 일 - 정신실 '너만 겪는 일도 아닌데 유난 떨지 마라' 유산을 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밖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이다. 기혼 여성만의 일이기도 했지만 얘기하다 보면 또 그렇게 희소성이 높은 일도 아니기에 공감을 얻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 셋이나 키우고 있잖아."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말은 위로인 척 책망을 곁들여 던져진다. 그 시선을 받아들이니 나도 내편을 들어 줄 수 없게 되었다. '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사건이 남긴 심리적 외상은 '나 여기 있소'를 끝없이 외친다. 그 외침에 반응해야 한다. 애도가 필요하다. 모든 상실은 애도해야 떠나보낼 수 있다. 남이 잊으라고 해서 그냥 잊혔다면 그것은 잊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 나 여기 있소!' 하고 돌아온다...애도하지 못한 과거는 반드시 ..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