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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엄마를 찾아.

자다 깼다.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부엌으로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는 듯이 계속 걸어갔다. 빨간 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 자동차들은 불을 켜고 달리고 있다. 자동차들이 빗속을 달리는 것 같이 보이는 건 내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얘야. 너 혼자. 어디 가니?" "엄마 찾으러요." "엄마가 어디 갔는데?" "몰라요" "어머. 너 길을 잃어버렸구나. 경찰서에 데려다줘야겠네. 근데. 아줌마가 지금 교회 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시간이라. 너 아줌마 따라 교회 가자. 그리고 내가 경찰서에 데려다줄게." "네"

엄마를 찾아가던 내게 말을 건 모르는 아주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아주머니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처음에는 그 옆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 어린이실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곳은 벽이 하얗게 칠해져 있었고,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장난감도 많고 내 또래에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엄마를 찾으러 가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서 정말 즐겁게 놀았다.

예배가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어떤 아이를 따라 바로 그 아주머니에게 갔다. 교회는 실내가 2층으로 되어있고 내가 작은 아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아주 큰 교회였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마치 잊고 있다 생각이 난 것처럼 옆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했다. "어머. 맞어. 나 얘 데려다 주려 경찰서에 가야 해. 교회 오는데 횡단보도에서 혼자 울고 있길래 내가 경찰서 데려다준다고 데리고 왔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가 말한다. "저런. 길을 잃어버렸나 보네... 어머. 나 얘 알아! 우리 동네 살아! 얘네 집도 알지. 얼른 데려다줘야겠네."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 "어머. 어쩜. 이럴 수가"를 연신 외치며 우리 집으로 갔고, 나를 찾아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던 아빠, 엄마에게 내 손을 넘겨주셨다. 엄마는 머리를 무릎까지 숙이며 고맙다고 하셨다.

40년이 지난 이 기억이 너무나 또렷하다. 횡단보도를 지나치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교회를 들어가 보면 정확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작은 내가 찍힌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수많은 순간 중에 한 순간만 어긋났어도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고 예배가 마치자마자 어린이실로 서둘러 오셨다면 경찰서에 가게 되었겠지. 횡단보도를 건너 집에서 한참 떨어진 다른 구역에 있는 40년 전 경찰서에 들어선 내가 다시 집으로 오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주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 엄마에게 데려다준다며 손을 잡았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다 미아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해외 입양되어 겨우 엄마를 찾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버려진 삶이 아닌 잃어버려진 삶이었다는 것에 감동해 흐르는 눈물에 같이 울었다. 전 날 야근을 하고 온 아빠가 내 옆에 자고 있었단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다음날  친할머니 생신잔치를 준비하러 시장에 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내가 사라졌단다. 내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아빠와 엄마의 삶이 평생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만큼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과 함께 울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 찾아 삼만리를 보며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래서 빨간 머리 앤의 친구가 되었나 보다. 잃어버려진다는 느낌이 무엇인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어서 그랬나 보다. 아주 오랫만에 우연히 만난 분이 한국에는 안 들어 가냐고 물으셨다. 막내 손을 잡고 있던 나의 어이없는 대답이 생각난다. "얘가 아직 말을 못해서요. 한국에 가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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