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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나도 그런 얘기 들어본 거 같은데. 그래도 너가 한 번 찾아봐. 그래야 확실하지" 때로는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어도 누군가 두 번 이상 "정말이야?" 하고 묻는 다면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 물음이 의심이 아니라 놀람이거나 기쁨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저런 말을 남겨줘야 마음이 편해진다. 간혹 어떤 정보를 주고 나서 그게 정말 그랬는지 찾아보고 틀렸으면 다시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저 위에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하더라며 신나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저 말이 기억에 남아 글을 쓰게 되는 이유를 적어보자면, 깜짝 놀랐다. 나는 말투도 엄마랑 닮았구나. 그럼 그것이 나인가? 엄마의 영향인가? 아빠와 엄마 이제는 남편까지 그 모두와 함께..
엄마 애뻐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48개월 딸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애뻐" 엄마. 엄마 예뻐? 물었더니 웅 그런다. 막내에게 젤 많이 하는 말이 우리 딸 예쁘다는 말이어서 따라하는 것이겠지만. 딸 눈에는 엄마가 예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때 내적치유 세미나를 들으며 나는 아들처럼 컸다는 깨달음이 왔었다. 초등학교 4학년 쯤 추석이니 옷을 사러 가자는 엄마말에 들떠 따라나섰는데 얻어 입은 옷은 남동생이 물려 입을 수 있는 국방색 바지였다. 둘째 큰 아버지네는 딸 셋은 전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왔다. 똑단발에 가무잡잡한 중2 아이가 원색 핑크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위대한 중2병 덕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며 크지 않았다. 남자 애들이 나를 놀리기 위해 쉬지 않고 만들어내..
충분히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 설정- 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끈은 고통이다. 'p233 삶의 비극성에 눈이 뜨인 그 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학원에 태워다 주려 엄마들이 타고 온 차들이 서 있는 길은 신차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 사이를 지나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를 지나야 했는데 바로 그 앞에 한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도라지며 직접뜯은 듯한 산나물들을 담은 비닐봉지 네 다섯개를 앞에 두고 몸을 살짝 돌려 앉아계셨다. 동네 시장에서는 늘 뵙던 할머니들인데 그곳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싼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몸을 ..
할 수 있으면 해 봐. 매일 이 닦을 때마다 대성통곡을 하던 막내가 부엌에서 최고의 방패를 가져왔다. '그래서 저항을 포기한 사람은 먹잇감이 되기 쉽다. 경고성 위협은 자신과의 싸움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거나 싸움을 걸어온다면 강하게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의지를 전달해야 하고, 그러러면 그런 의지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p238 싸움의 기술, 정은혜,샨티 치과에서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아서 결국 소쿠리를 치우고 이를 닦이긴 했지만 저 아이의 결연한 의지 만큼은 세상 살아가는데 자신을 보호하는 용기로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느린 아이다. 엄마 친구분들이 모이면 엄마에게 자주 하시던 말이있다. " 아휴..그 집 딸은 왜 그렇게 느려. 내가 저번에 전화하는데 여보세요 끝나기 기다리다 숨 넘어가는 줄 알았네.." 아버지 돌 굴러가유의 동네가 아빠의 고향이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일년에 몇 번 밖에 가지도 않던 아버지 고향의 영향을 그렇게 받고 있나보다. 갑작스런 상황에서 나는 느려진다. 몸은 움직이고 있더라도 머리는 생각을 하더라도 마음은 느려진다. 모든 상황이 지나가고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곱씹고 또 생각한다. 어제는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은 지방에 계신 선생님 부부께서 코로나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회복중이시라고 자세한 소식을 직접 전해 들었지만 놀람에 마음이 느려져 버렸다. 무어라 대답을 했어야하는 카톡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기도 남매. 첫째는 둘째한테도 그랬지만 열한 살 차이가 나는 막내를 늘 잘 대해 준다. 잘 놀아주고 양보하고 예뻐한다. 둘째는 좀 다르다. 막내를 예뻐는 하는데 귀찮아 하고 크게 관심이 없다. 막내는 유독 둘째만 보면 거침없이 질투심을 드러내며 내 옆에도 못 있게 하고 아빠 옆에도 못 있게 한다. 서운해 할 거 같아서 말을 걸면 자기는 괜찮다며 막내는 어려서 그렇다며 다 이해한다고 한다. 자기 마음을 더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에게 마음에 관련된 질문 받기를 늘 귀찮아 하는 아들이기도 해서. 둘이 손잡고 가는 게 너무 좋아보여 찍었다고 사진을 보여주니 둘째가 언제 찍었냐며. 자기는 정말 몰랐다며 한 참을 들여다본다.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저렇게 꼭 잡은 두 손을 보니 ..
행복하니? 대학 졸업 후 월 60을 받으며 학원강사를 했었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원 자리에 있던 보습학원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끝나고 오기 전 까지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원장님 남편 일을 도왔다. 원장님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출근하는 학원이고 아이들은 오고 싶은 시간에 와서 가고 싶을 때 집에 갔다.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는 정도였다. 집에서 걸어서 3분거리여서, 일하는 직원이 나 뿐이라서, 월급이 적은 만큼 원하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 곳을 선택했다.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때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는 내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은행에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딱 반 매월 30만원 짜리 적금을 들게 하셨다. 그 돈으로 결혼식도 올리고 치과치료도 하게 ..
조각배 나는 작고 부서지기 쉬운 초라한 조각배이다. 거친 폭풍우는 고사하고 가느다란 빗방울도 피하지 못할 조각배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다행히 바다에서는 모든 배가 흔들린다. 흔들림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줄의 연결되어 항해를 계속 해 나가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작고 초라한 조각배이지만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다른 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몫의 노를 저으며 흔들릴 때는 흔들리고 바람이 불 때는 작은 돛을 펴고 함께 할 것이다. 비가 좀 내리지만 오늘은 여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