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려 깊은 수다

행복하니?


대학 졸업 후 월 60을 받으며 학원강사를 했었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학원 자리에 있던 보습학원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끝나고 오기 전 까지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원장님 남편 일을 도왔다.

원장님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출근하는 학원이고 아이들은 오고 싶은 시간에 와서 가고 싶을 때 집에 갔다. 문제집 푸는 걸 도와주는 정도였다.

집에서 걸어서 3분거리여서, 일하는 직원이 나 뿐이라서, 월급이 적은 만큼 원하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그 곳을 선택했다.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던 때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내린 결정이었다.

엄마는 내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은행에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딱 반 매월 30만원 짜리 적금을 들게 하셨다. 그 돈으로 결혼식도 올리고 치과치료도 하게 된 것은 지금도 엄마한테 고마운 일이다.

물론 월 30도 나에게는 평생 써 본 적 없는 큰 돈인 것은 맞았지만 교통비가 안 든다 해도 매일 점심을 사 먹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유일한 복지인 믹스 커피 한 잔을 끓여 옆에 두고 반찬 뚜껑을 열었다. 한 숟갈 두 숟갈 뜰 수록 마음은 더 차가워 졌다. 그 순간 다가온 질문에 목구멍이 뜨거워진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형광등 불빛과 눈을 맞추며 울지 않으려 이를 물었다. "행복하냐구요? 지금 나를 비웃는 거죠? 내 앞에서 행복이라니!!!"

혼자 있던 사무실에서 악을 썼다. 가라는 길로 가지 않더니 참 꼴 좋다 하는 말로 들렸다. 울면 지는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천장을 향해 쳐들고 소리를 질러대다가 도저히 비뚤어진 내 마음에서 나올 수 없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 분의 질문은 연결의 수단이다. 그 분은 취약성 자체를 위해 그들을 취약성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조건을 고려하면 취약성은 하나님과의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심화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태다. 다른 길이란 없다.'
- p 187 - 수치심, 커트 톰슨 (IVP)

신앙의 바닥을 헤매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질문 덕분에 나는 수치심으로 몸서리치며 외면하던 나와 연결되었다. 영원을 함께하시는 나의 아버지의 손을 다시 잡음으로 많은 누군가들과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사려 깊은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분히  (0) 2021.09.07
나는 느린 아이다.  (0) 2021.08.22
엄마를 찾아.  (0) 2021.08.03
어땠을까.  (0) 2021.07.28
덧니.  (0) 202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