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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으려 쓰는 아픈 글. 불러주시는 문구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를 4주째. 내 인생의 이불을 탈탈 터는 기분이다. 지나치게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한 주제들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더는 피할 수 없이 글로 내어놓아야만 하는 순간. 머리에서 꺼내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에 심장이 아프다. 오늘은 감정이 더는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실은 더 울 수 있었는데 엄마가 왜 저러나 쳐다보는 놀란 애들 때문에 좀 참았다. 통곡하고 싶다. 소리내서 울고 싶다. 악을 쓰며 울고 싶다.
눈 가리고 아웅 다섯살이 된 딸아이는 눈을 가리면 다른 사람도 자기를 못 보는 줄 안다. 그러니 숨기가 얼마나 편할까. 어디든 있는 곳에서 눈만 가린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지면 눈이 아니라 마음을 가린다. 감정은 흘러가는 것이고 흘러 오는 것이어도 그 원인을 찾으려는 눈초리에는 눈을 가리는 법부터 배운다. 저런 조막막한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말이다. 눈을 들키면 마음을 숨길 수 없기에. 그런데 다섯살 아이처럼 나도 몰랐던 것 같다. 그것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것을.
선을 발견하다. 선들을 발견했다. 내 마음에 그어진 여러개의 선을 보게 되었다. 누가 그어준 것도 있겠고 내가 더 선명하게 덧 그은 것도 있다. 그 선들은 둘로 나누는 역할을 한다. 이쪽과 저쪽. 옳고 그름. 너와 나. 그들과 우리. 그 안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이룰 수 없으니 이제는 그 선들을 지워나가야겠다는 글을 썼는데.. 새벽에 묵상을 하며 그 선들이 한편으로는 나를 지키는 방편들이었다는 걸 알았다. 넘어가지 않았고 넘어오는 걸 경계했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이었다. 이제 그 선들을 지워간다면 상처받는 일들이 더 많아지겠지.. 그 선들을 분별해서 남겨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모두 지워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 선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띨 라두 집 옆 수퍼에 갔는데 참깨 강정이 있어서 사왔다. 며칠 후면 '마그' 라는 10번째 달의 첫 날인데 그 날 먹는 간식이란다. 같이 먹는 마랑 고구마도 시장에 많이 나와 있다. 여기는 이제 정말 추위가 한 풀 꺾여서 햇빛 쨍한 곳에 가면 따뜻한 정도가 되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하는 것 같다. 2021년 한 해도 모두 잘 이겨내기를 바라며 고소하고 달달한 깨강정을 한 입에 넣고 깨문다.
셀로띠 크리스마스겸 새해 선물로 셀로띠를 선물받았다. 일람이 고향인 V선생님의 특제선물인 일람티와 동네에서 재배해 가족들이 먹는 강황가루. 우리로 말하자면 가족만 나눠먹는 고춧가루 같은 것이다. 고향에 다녀오실 때마다 잊지 않고 우리 몫을 꼭 챙겨주신다. 올 해는 큰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꼬박 하루길을 버스로 다녀온 선생님의 선물이다. 셀로띠는 무슨 맛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찹쌀 튀김 비슷한데 전혀 쫀득이지 않는 맛 정도라면 어떨까 싶다. 셀로띠는 한국에 전 비슷한 명절음식이다. 한국 시장에도 전을 파는 가게들이 많듯이 여기도 길거리에서 파는 집들이 종종있다. 나도 좋아해서 가끔 사먹는다. 한 2개 먹으면 배가 부르다. 저 사진을 찍기 전에 이미 큰 애가 두개 막내가 한개를 가져갔다. 셀로띠를 하려면 엄청 큰 ..
방학 아이들 방학이 아닌 내 방학이 얼마만인지. 여느 겨울과 다를 것 없는 날들이 방학이라 이름붙여지니 새로운 시간이 된다. 기말고사 성적표를 확인하고 나니 더 홀가분하다. 마치 아는 것처럼 막내가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고 나한테 아주 딱 붙어버렸다.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고 와서 주으라고 한다. 물 하면 물먹이고 신 하면 신발 신키라는 소리다. 얘를 데리고 내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싶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하나 싶다. 늦은 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 정말 나는 한 번에 하나 밖에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수업 중에 애들이 말을 걸면 그 말이 전혀 들리지를 않는다. 일할 때만 그런게 아니라 마음도 똑같다. 마음도 한 번에 한 마음밖에 없는지 어떤 일에 마음이 쏠려 있으면 다른 일이 마음에 들어오..
소로우가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이 집을 갖기 전에 소유해본 유일한 집은 보트를 제외하면, 이따금 여름에 여행 할 때 사용하던 텐트 하나뿐이었다. 이 텐트는 돌돌 말려 지금은 다락에 처박혀 있다... 그처럼 가벼운 겉 옷만을 걸친 이 집의 뼈대는 내 주위에 형성된 하나의 결정체 같은 것이었고 집을 지은 사람인 나에게 반응을 했다...나는 구태여 바람을 쐬기 위해 밖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집 안의 공기가 조금도 그 신선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안에 있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문 뒤에 앉아있었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인데, 그것은 비가 몹시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브런치에서 구독하는 몬스테라님이 추천하셨던 책이라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 중간도 읽지 못해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 할 단계는 아니다...
안 좋은게 좋아진 순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 눈 앞에 자리 잡은 안경은 신체의 일부가 되어서 그 자리에 잘 있어줄때는 불편함이 없지만 벗어둔 안경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는 누군가를 불러야 할 정도로.. 그런데 정말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눈이 나쁜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었나 싶은 순간을 맞았다. 때마다 다가오는 날들을 기념하는 일과 거리가 먼 나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올때마다 트리를 만들자는 큰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몇 해 전 장만한 트리는 벌써 다리가 다 부러졌다. 그리고 자기 의지가 더욱 강해진 막둥이의 손에서 최대한 멀리 설치해야 하는 이유가 더해져 트리는 공중으로 들려졌다. 동네 전파사에서 사온 전구까지 둘러서.. 세수하고 안경을 벗은 채로 나와 우연히 마주하게 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