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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어땠을까.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라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서 있다는 걸 가까이 가서야 알아차렸고 움츠러드는 나를 알아보았는지 한 아이가 뒤로 다가와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오던 다른 남자아이도 한 번 더 머리를 잡아당기고 도망쳤다. 덩달아 남자아이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지만 그 아이들을 쫓아간 게 아니라 집으로 뛰어갔다.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따라온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우리 집을 따라온 아이들이 있을 거고 내가 집 밖에 나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또 괴롭힐 것이다. 무서웠다. 눈물을 멈추지 않는 나를 보던 엄마는 말을 해보라고 했다. 왜 우는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며 내 걱정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괜찮다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울다 지칠 때 까지 울었다. 울다가 흐느끼다가 다시 울고 물 마시고 또 울었다. 눈물과 기운이 다 소진되고 나서야 멈추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하던 엄마는 지치셨다.

억지로 멈추게 하지 않으셨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엄마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게 이렇게까지 울 일이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는 혼자만의 설움이 서러워 울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 남자 아이들한테 신경질내고 소리지르고 하나라도 붙잡아 쥐어박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쫓아올까봐 겁먹고 뛰어온 나를 만약 엄마가 꼭 안아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지금보다는 용감해 질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것은 이렇게 쓰고 나면 내 마음의 방에 불이 하나 더 켜진다는 것이다. 그 온기가 내 아이들을 한 번 더 안아줄 수 있게, 한 번 더 미소지어 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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