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그냥 엄마다.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야


사춘기를 늦게 시작한 큰 애와 달리 둘째는 13살 사춘기이다. 모든 일에 시큰둥,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겠어요", "상관없어요" 가 돌아온다. 큰 애한테는 답답해서 화를 낸 적이 많았는데 둘째를 보면 울고 싶다.

내일이면 6학년 수업을 시작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시작도 전에 미간을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요?", "왜요?", "뭐요?" 하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다시 태도를 논했다. 태도, 그놈의 태도를.

최근에 둘째와의 (혹은 나 혼자만의) 갈등을 겪으며 최대한 따뜻하게 조용하게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자기 전에 아이에게 친절히 인사하며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한참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엄마. 공책 찾아 주세요." 하며 말을 건다. 아무렇지도 않다. 혼자 설거지하며 눈물이 날 뻔 했었다. 날 건드리면 '엄마라도 예외없다.'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느꼈다. 거리감이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팠다.

다가가면 물러서고 물러나면 다가오는 진 빠지는 일을 셋 중 제일 아픈 손가락인 아이와 해야 한다는 게 슬펐다. 속이 상했다. 고통스러웠다. 큰 애와 달리 사고도 안치고 다치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고 요구하는 것도 거의 없는 아이였다.

"엄마 반 바지가 없어요." 키가 쑥 커버려서 작아진 반바지를 나눠주고 새로 사야 했다. 대부분 형이 입던 것을 입는 아이에게 물려입기 어려운 바지라도 사주고 싶었다. "살 거면 됐어요. 필요 없어요. 사지 마세요." 하는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입어보기 귀찮아서 그런 거라며 남편이 혼자 가서 사오라 했다. 원래 입던 거랑 비슷한 검정색으로 몰래 사와서 빨아서 서랍안에 넣어 두었다. 새 것인지 모르고 꺼내 입는다. 인지력도 이해력도 어휘력도 뭐하나 마음 놓이는 것은 없다. 그냥 사랑하는 아이다.

'나는 그냥 엄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쉽게 만족하는  (0) 2022.05.21
사랑받았다  (0) 2022.04.23
성장통  (0) 2022.04.12
혼자만의 전쟁  (0) 2022.03.23
엄마가 저번에..  (0) 202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