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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잡아주는 당신_ 책

수치심 - 커트 톰슨[중년에 꼭 만나야 할]

이렇게 읽기 어려운 책이 있었을까? 스무 번 쯤 읽고 나니 드디어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읽지 않고는 읽어지지 않는 중년에는 꼭 만나야 할 수치심이다. 실은 책의 모든 부분을 옮겨 적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한 구절만 뽑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 잡아서 결국 찾아냈다. 수 많은 구절을 적었다가 다 지우고 하나만 남겼다. 

 

'인간을 규정짓는 관계적 모티브는 우리가 가능한 한 열심히, 혹은 적어도 지금 하는 것보다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 혹은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옳음에 관한 것도 아니고 권력의 획득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 각각의 모티브(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비전들)는 수치심의 불안의 계략에 빠져든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하며 정보를 수집하려 한다. 영어 정보, 시사 정보 하다못해 그냥 일어나 치우면 될 집 정리정돈 정보라도 수집하겠다고 읽고 듣는다. 행동하지 않는 내가 답답하고 나에게 변명하는 내가 우습다가도 집 안 꼴을 보면 한심하다. 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학교가기 전에 높아지는 불안을 "그냥.내가 싫어!"로 쏟아내고 나가는 큰 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냥. 몰라"를 입에 달고 사는 둘째와 아직도 문장으로 말하지 못하는 여섯 살 막내를 품고 넘는 육아라는 산은 넘기전에는 히말라야 보다 높아 보이고 넘고나면 그저 지나간 일이 된다는 것을 되뇌이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이 든다. 

 

모른다 싶으면 쪼그라들게 하는 열등감이 조금이라도 안다 싶으면 우월감으로 널을 뛰니 하루 안에 두 번이나 실수를 하고 깨달았기에 망정이지.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를 기준으로 열등감과 우월감이 번갈아가며 솟구쳐 오르는 내 속이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수치심은 깨달음을 준다. "너 겸손한 척 하면서 실은 잘난 척 하고 싶잖아. 욕심 없는 척하면서 인정받고 싶어하잖아. 너 아닌 척 하지만 실은 그렇다는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잖어?" 하며 빤히 쳐다본다. 쥐구멍 앞에서. 얼굴은 화끈거리고 몸은 둔해지고 생각은 파닥거리느라 혼미해지려는 순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되뇌여야 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는 내 사랑하는 딸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중년에는 반드시 만나야 할 수치심이다. 찾아내서 무시해야 할 수치심이다. 사랑안에 드러내야 할 수치심이다. 기쁨으로 싸워야 할 수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