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그냥 엄마다.

하기 싫구나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 온 아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먼저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들을 찾으라고 했다. 책을 다 읽었다며 잠깐 쉬겠다 해 그러라 했다.

이제 단어를 찾겠다고 한 아들에게 공책을 달라고 했다. 공책을 보니 선생님의 조언이 가득했다. 그걸 보며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해야지 했더니 자기도 그런 건 다 안다며 짜증을 낸다.

화가 났다. "니가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그런식으로 할거면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알아서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들어야지" 죄송해요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공부하라고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한다. 공부보다 관계가 먼저라고 매 순간 다짐한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이렇게 이쁜데 다들 건강하게 지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그럼에도 월요일에 시험이면 금요일부터는 책을 좀 봐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나보다. 아들의 요청에 너무 적극적으로 응하다 짜증을 들으니 열이 받는다. '공부 도와주고 시험 점수 잘 나온다고 내가 칭찬받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하는거지'

굳은 얼굴로 방에 들어와 기분이 영 나쁘다. 오늘도(하물며 오늘!!) 아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엄마에게 표출하면 혼이 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고 말았다. "책 읽는 게 정말 싫어" 라는 말을 세 번 넘게 하길래 딱 한 번 "그래 하기 싫구나"라고 대답해 주었다.

물고가 트여서인지 시험 공부가 왜 하기 싫은지, 책 읽기가 얼마나 싫은지 계속 이야기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계속 나를 건드리고 있었던 거 같다. 그 부정적인 말들이 내 표정을 점점 굳어가게 하고 있는 걸 아들은 몰랐다.

"공부가 하기 좋은 사람이 어딨냐?"고 한다. 전혀 동의되지 않는 말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한 번도 공부를 잘한 적이 없지만 공부를 좋아한다. 그런 내게 공부 싫고 책 싫다는 말이 가진 위력이 생각보다 대단한 거 같다.

이 글을 쓰는 데 두 번이나 아들이 근처에 와서 말을 못 걸고 돌아갔다. 내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다. 나는 이 글을 올리고 아들에게 다시 가서 도울지 아니면 이대로 막내를 데리고 방에 가서 잘지 모르겠다.

아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데 이 글을 쓰면서도 표정이 풀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엄마에게 짜증을 내서는 안된다.' 라는 목소리를 '엄마에게 짜증을 내도 괜찮다.'로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까. 지금 아들은 밖에서 슈퍼스타의 '괜찮아 잘 될거야'를 따라 부르고 있다.





'나는 그냥 엄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멸치맛  (0) 2023.02.08
안아줘요 빨리요!  (1) 2023.01.15
개미와 산책  (2) 2022.11.23
아들아  (2) 2022.10.04
엄마 화났어?  (0) 202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