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6) 썸네일형 리스트형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 필요한 수첩이 보이지를 않는다. 거기 써둔 메모를 꼭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자주 쓰는 수첩은 아니어도 늘 두던 곳을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 다음 있을 곳을 찾아보아도 또 다른 곳을 찾아보다도 찾을 수가 없다. 온 집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땀도 나고 짜증도 솟아 올라온다. 누가 만진 것은 아니다. 만질 물건이 아니기에. 분명히 어딘가에서 그 수첩을 본 기억 쪼가리가 남아 있는데도 찾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잘 놓아 두었다고 생각한 사진이 보이지를 않았다. 숙제 하느라 필요하다고 찾아달라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찾고 찾으면 언젠가 어디선가 나오기는 하지만. 찾는 과정에서 특별히 나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난다. 그래서 막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러니.. 비 오는 날의 풍경 며칠째 비가 온다. 아무런 난방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집은 눅눅하고 빨래는 꿉꿉해 걷어내지를 못한다. 비가와서 좋은 것은 푸르고 푸른 남의 집 텃밭이다.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비가와도 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탄다. 남편도 저렇게 입고 학교에 갔다. 우비가 없을 때는 우산도 좋다. 락다운이 끝나 활기찬 창 밖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다. 다음 주 쯤 락다운을 다시 시작한다고 하지만 오늘은 오늘이니까. 다시. 하지만 좀 다른 것은. 저녁을 먹고 좀 쉬어보자 앉았는데 쿵. 큰 애랑 놀던 막내가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 울지 않는 막내를 들어 올려 안으니 울기 시작한다. 세수를 시키는 데 큰 아이가 "괜찮아. 괜찮아." 그런다. "그래.. 괜찮아... 걱정 마 " 했으면 이 글이 없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쿵 소리 못 들었어." 했기 때문에 이 글이 쓰인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어디 다쳤는지 살펴보고 추궁이 시작되었다. 아니. 말꼬리 잡고 혼내기가 시작되었다. "쿵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났는데 어떻게 괜찮아?" 막내가 흥분해서 점프를 했고 미처 잡지 못했지만 미끄러질 줄 몰랐던 게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억울한 큰 애는 "그래.. 그럼.. 안 괜찮네.. 안 괜찮지?" 하고 비꼬았다. 그 사이 내 품에서 .. 할 수 있는 것 계속 하기. 그 동안의 내가 어떤지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저 화분에 씨앗을 심기 전부터 생각했어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오늘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 자! 나는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내 마음 속 이곳은 지구의 중심에서 멀찍이 떨어져있어 중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공기의 저항도 느낄 수 없을만큼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중 인것만 알 뿐 떨어짐으로 인한 고통은 거의 없다. 어릴 적에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 이모의 결혼 준비로 이모와 엄마가 외출한 사이에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다. 자물쇠가 잠겨있는 걸 보고는 바로 친구 집에 가서 놀았다. 놀다가 틈틈히 엄마가 왔는지 집에 가 보곤 했다. 우리 집은 반지하여서 집 까지 내려가지 않고 계단.. 웃으면서 울기. V선생님은 시골에서 올라왔다. 아버지는 벌써 선생님이 어릴적부터 엄마와 동생을 두고 다른 사람과 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배다른 동생들이 사는 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인이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동생들 밥해주고 돌보는 조건으로.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해 네팔어 선생님이 되었다. 성실함과 충성스로움으로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딛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혼자 영어를 배우러 다녔고 지금은 다른 선생님들을 조율하는 교감의 역활을 맡고 있다. 실은 그 때 그 자리에는 두 명의 후보가 있었다. V선생님과 S라는 사람이. 교장선생님은 S를 원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영어도 잘하고 인물도 좋고 사교적이기까지 하니. 영어가 서툴고 인.. 둘째라서 힘들지. 마이클 조던이 어릴 때 그의 형 레리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쓴 책을 읽고 있던 우리 둘째에게 물었다. "마이클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잘 알지. 엄청 힘들었을거야" 말이 느렸던 둘째는 약간 부족해 보이는 이해력과 좀 더 부족한 표현력을 가지고 살고 있다. 특정영역에 대해서는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는데 몰라." 라는 말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대신 설명해보자면 자기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말로 설명하려면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말일거다. 이런 종류의 말을 자주 한다. "기억이 나는데 기억이 안나." " 아~ 맞다 그렇지.난 몰라 " 동화책을 읽어보며 나도 다시 한번 둘째의 마음에 다가가본다. 나는 첫째, 남편도 첫째. 우린 사실 둘.. 집 7th. 쉼도 삶의 부분임을 인정한 시간. 깊은 잠을 샘내듯 가끔 흔들어 주는 여진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일상이 돌아왔고 무너져 내린 담장들과 금이 간 건물들만이 지진이 왔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다시 이사가 찾아왔다. 지진이 조금 잠잠해지자마자 매번 은행에서 오는 거다 친구가 구경 오는 거다 라며 낯선 사람들을 데려와 집을 보게 하던 주인 할아버지 부부가 큰 지진을 겪고 심신이 미약해지신 이유로 집을 팔고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주하시기로 드디어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많은 집들이 지진에 의해 금이 가거나 파손이 되어 수리가 필요했고 또 아파트나 시내에 살던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원했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일이 어려웠다. 애써 구한 집에 계약을 하겠다고 전하면 가격을 다시.. 글을 쓰지 못하겠는 이유. 도무지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써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블로그를 열어봤더니 일주일이나 지나 있었다. 글 쓰는 페이지를 눌렀는데 도대체 뭘 써야 하나. 그래. 글을 쓰지 못하겠는 그 이유를 써보자. 변명이든. 뭐든 간에. 그건 한 바닥이라도 쓰겠다. 는 생각이들어 제목을 적었다. 나와의 약속(글을 한 편이라도 더 써본 내가 되게 해주기 위한)을 지키기 위해 계속 글을 쓸거지만 쓰다가 막힐 때는 왜 내가 글을 쓸 수 없었는지를 적어봐야 겠다. 그렇게 또 다른 카테고리도 만들어 보구. 이 일주일간 글을 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3월 24일 부터 시작되어 57일이 넘어가는 코로나 봉쇄상태 때문이다. 일찍 봉쇄령을 내린 덕분에 확진자는 402명 정도 이다. 길어지는 봉쇄령에 지친 사람들이 산..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