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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울기.




V선생님은 시골에서 올라왔다. 아버지는 벌써 선생님이 어릴적부터 엄마와 동생을 두고 다른 사람과 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배다른 동생들이 사는 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인이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동생들 밥해주고 돌보는 조건으로.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해 네팔어 선생님이 되었다. 성실함과 충성스로움으로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딛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혼자 영어를 배우러 다녔고 지금은 다른 선생님들을 조율하는 교감의 역활을 맡고 있다.


실은 그 때 그 자리에는 두 명의 후보가 있었다. V선생님과 S라는 사람이. 교장선생님은 S를 원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영어도 잘하고 인물도 좋고 사교적이기까지 하니. 영어가 서툴고 인물은 훌륭하지만 내성적인 V선생님보다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S는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근처에 규모가 큰 학교에 지원해 말 한디 없이 옮겨갔고 우리학교에 있던 여 선생님과 결혼해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는 학교에 찾아와 잘난 척을 어마어마하고 돌아갔는데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지만, 그 날 5년 동안 남편이 한 번도 나에게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에 우리가 운영하던 컴퓨터 회사직원에게 당시 자기 월급의 3배가 넘는 컴퓨터를 가져가고는 입을 닦았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자리에 앉기 전에 일찍 자신을 보여준 S에게 고맙다.


V선생님은 더 값진 사람이 되어갔다. 물론 한 고비는 넘겨야 했다. 방학 때 집에 다녀온 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온 것이다. 어머니가 정해준 힌두 처녀와. 하지만 우리가 놀란만큼 자기도 놀란 결혼을 하고 온 것이 분명했기에 기다리기도 했다. 결론으로 정당화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금은 부부가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V선생님의 헌신적인 아내와 딸을 향한 사랑이 아주 큰 힘을 보탰다.


큰 지진이 났다. 거의 10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보듬고 지키며 몇 달을 지내는 동안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시작된 공황장애가 일상과 함께 선생님에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열심히 치료를 받았고 많이 회복되었다. 솔직히 자신의 상태를 알리며 기도를 부탁했고 우리는 함께 했다.


많이 좋아진 거 같다고 하다가도 언젠가 한 번은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다시 격려와 위로로 다독였고 중간중간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의 사랑으로 회복되어져갔다.


오늘로 72일째 락다운. 코로나 장기 봉쇄와 함께 선생님의 공황장애는 다시 고개를 든다. 선생님들에게 동영상 강의를 하고 있는 남편이 어제 학교를 다녀와서는 전해주었다. V선생님이 많이 어려워한다고 했다. 줄였던 약을 다시 더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막내가 유난히 낮잠을 거부하며 돌아다니는데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선생님을 향한 나의 애처로움과 선생님이 어려워하면 함께 마음이 아픈 남편의 마음에 공감이 되어 밀고 올라온다. 그런데 요 조그맣고 밝은 아가가 흐느낌이 커질때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불안해 한다. 내 입이 웃으면 같이 깔깔거린다. 크게 웃으면서 더 크게 울었다. 또 다시 쳐다본다. 크게 웃으면서 작게 울었다. 아이와 함께 웃으면서 울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하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지 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지. 의지 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인지. 어쩜 내 입에서도 나갔을 말일 수도 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믿지도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믿음의 어느 부분을 극대화하고 사랑의 어느 부분만 극대화해서 섞어둔 것인지 깊이 오래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바라고 간절히 원하는 것은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신다 해도 기쁘게 보내드려야 함을. 좋은 친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지금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때는그 때 필요할 힘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것만은 (지금은 외면하고 싶은)경험이 알려준다.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웃어야 하는 엄마가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