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85)
곰 세마리의 위로 자려고 누우니 막내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다. 내 팔로 자기 몸을 두르고 눈을 맞춘다. 행복한 순간이다. 샘을 내듯이 마음이 걱정을 토해낸다. 다음 달이면 세 번째 생일인데 아직도 제대로 하는 말은 아빠, 엄마 정도이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컵을 가져오고 밖에 나가고 싶으면 신발을 들고 온다. 여섯 살이 돼서야 문장으로 말을 했던 둘째를 이미 키워보았다. 그래도 둘째는 자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분명히 있었다. "아따" 그런데 막내는 그런 말이 없다. 자기 전에 소리를 질러댔던 것은 매일 자던 낮잠을 건너뛴 탓이겠지만. 그 눈을 바라보다가 꼭 껴안았다가 곰 세마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아빠" 깜짝 놀랐지만 노래를 계속했다. "엄마" "아기" 으쓱~ 으쓱~ "짜라따" ..
매일 산책. 다시 락다운이 시작될거 라는 소문이 돈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 강한 계엄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50명대로 내려갔던 확진자가 400명 넘게 늘어나니 나오는 소문들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될때까지는 모든 것은 소문이다.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산책을 하려고 한다. 막상 집을 나서고 나면 아무일도 아닌 것을. 나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커진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거부감이 보인다. 그러니 더욱 매일산책은 그 언젠가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이 상황에 대해 쓰려고 하면 마음에서 저항감이 든다. 잘 지내고 있으면서 뭘 쓰려고 하나. 다들 힘든데 또 뭘 쓰나. 이제 뉴 노멀에 익숙해 져야지 무슨 투정이냐. 하는 말들이 글을 누른다. 아니 마음을 누른다. 그래서 써야겠다. 가끔씩..
미안함. 아이들에게 미안해 하는 엄마 아빠들을 본 적이 있다. 가까이에 우리 엄마 아빠만 해도 그런 말을 가끔 하신다. 너네 키울때... 애들을 혼내고 미안한 적은 많지만, 이런 마음이 들어 아이들한테 미안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 마음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일단 써보자면, 아이가 어릴때는 해 주지 못할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안해주는 것이 많았지.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안 해 주는 게 아니라 못 해 줄 것들이 많아 진다. 첫째와 둘째만 데리고 산책을 갔다. 한국에 간 친구들이 있어 마음이 그런지 요 며칠 부쩍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 얘기한다. 한국에 가서 친구들하고 놀이동산도 가고 떡볶이도 먹고 싶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도 못하게 하는 것 보다 말은 하고 싶은 ..
수강신청하다. 내 일상은 코로나 전후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나에게는 기저귀도 떼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 34개월 껌딱지 막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왠지 내 시간도 느려지고 뭐라도 하는게 나을 것 같은 무료함이 더해졌다. 그래서 사이버대학에 편입했다. 이번엔 '한국어학과'로 직진했다. 문예창작학과가 옆에서 손짓했지만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어에 대한 호감을 많이 느낀다. 한국어를 매개로 다양한 만남도 기대하게 된다. 무엇보다 늘 "아~ 그거 아는데 몰라"라고 하는 둘째와 5살이 되어서야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오빠를 이겨보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는 막내를 가르쳐 볼 수 도 있을 듯 싶다. 특별히 가진게 없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 되었는데 '국가장학금'의 도움으로 이미 낸 입학금도..
블로그도 참 나답다. 글을 쓰며 스스로 느끼기에는 50% 이상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주 작은 일을 너무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과 같이 쓰는 공유 폰에 가까운지라 며칠 전 티스토리 앱이 갑자기 로그아웃이 되어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주 쓰는 번호들을 다 입력해도 반응이 없다. 비밀번호를 변경하려면 노트북에서 해야 하는데, 큰 아들이 노트북을 끼고 산다. 말 한마디면 비켜줄 텐데, 막내가 낮잠 잘 때 하면 되는데 차일피일 미뤄진다. 다시 핸드폰에서 아는 비밀번호들을 총동원해 입력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일이다. 근데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지저분한 장난감들을 정리하고 안 노는 장난감은 넣어두고 분류하고 버리면 되는데 그냥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던 때 처..
답정 국문과. 였던 나였다. 학창시절 내내 문학소녀라는 별명을 들었고, 읽고 쓰는 것에서만 두각을 드러내었다. 큰 상을 탄 적은 없지만 졸업할 때는 학급문고에 글을 올리곤 했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언어영역 점수와 논술이 아니었으면 대학을 갈 수나 있었을까 싶다. 그런 내가 경영학과를 갔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여기서 구더기는 한문. 잘 알아보지도 않고 국문과는 한문을 많이 쓸 것 같다 지레 겁먹구 학창 시절 내내 아무리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던 한문을 피해 경영학과를 갔다. 그리고 또 한 번 대학 졸업 즈음에 심각하게 대학원에 갈 준비를 했었다. 그 때도 한 번 국문과관련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진로고민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그 결과가 이러했다. 나 한사람을 놓고 ..
집 9th. 지금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전에 살던 집이다. 지금도 이 집 앞을 지나 산책을 간다. 기분이 이상하다. 집안의 모든 구조를 알고 있고 곳곳에 우리 가정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집인데 굳게 닫힌 대문 안으로 한 발 짝도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설렘이 아쉬움보다 늘 컸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지날 때마다 그 집에서 있었던 우리의 추억들이 나를 잡아끈다. 그중에 나를 가장 잡아끄는 추억은 가족들이 모여 막내의 돌잔치를 하고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다. 내가 만들어준 개량한복을 입고 돌사진을 찍은 지금보다 작은 막내가 거기에서 아장아장 걸을 것만 같다. 또 이사를 한 이유, 그전에 집에서 이사를 한 이유 포함해 최근 세 번의 이사는 모두 비자 때문이다. 15..
쉰다는 것. 쉼을 갖는 다는 것. 누군가에게나 여러의미로 쉰다는 것을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쉬는 것은 읽는 것이다. 저녁을 먹구 설거지까지 마치면 아이들이 잠시 자기들끼리 뛰어다니구 노는 틈에 책을 열어 읽는다. 책을 열기 어려우면 브런치를 열고 계속 읽어내려간다. 그렇게 쉰다. '메모독서법'이란 책을 읽고나서는 그렇게 읽어재끼는게 왠지 잘못하는 것 같고 마음이 무거워 한동안은 읽은 책에 대해 정리하지 않고서는 다른 책을 시작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했더니 한동안 편히 읽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나를 묶어두었던 미라슬로브볼프의 '일과 성령' 을 정리하고 다음 책을 읽으려 했더니 소양이 부족해 도저히 정리 해 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책에서 힌트를 얻어 잠시 접어두고 다음 책을 집어들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