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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다시. 하지만 좀 다른 것은.




저녁을 먹고 좀 쉬어보자 앉았는데 쿵. 큰 애랑 놀던 막내가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 울지 않는 막내를 들어 올려 안으니 울기 시작한다. 세수를 시키는 데 큰 아이가 "괜찮아. 괜찮아." 그런다.

 

"그래.. 괜찮아... 걱정 마 " 했으면 이 글이 없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쿵 소리 못 들었어." 했기 때문에 이 글이 쓰인다.

밖으로 데리고 나와 어디 다쳤는지 살펴보고 추궁이 시작되었다. 아니. 말꼬리 잡고 혼내기가 시작되었다. "쿵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났는데 어떻게 괜찮아?" 막내가 흥분해서 점프를 했고 미처 잡지 못했지만 미끄러질 줄 몰랐던 게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억울한 큰 애는 "그래.. 그럼.. 안 괜찮네.. 안 괜찮지?" 하고 비꼬았다.

 

그 사이 내 품에서 울다가 진정이 된 막내를 아빠 품으로 보내놓고 멀찍이 떨어져 불안해하고 있는 큰 애를 향해. "동생이 다쳤는데 안 괜찮지? 그게 할 말이야. 그렇게 비꼬아서 말을 할 수가 있어?" 이젠 대답이 없다. 그렇지. 괜찮다고 하니 뭐가 괜찮냐고 하고 안 괜찮다고 하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하니 이제 할 말이 없는 거다.

돌아서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애들은 방으로 가고 남편이 그런다. 큰 애가 붙잡을 겨를 없이 막내가 미끄러진 거 같다고. 애 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잘 보면 그만이고 다치거나 하면 죄인이 되기 십상이다. 왜 큰 애한테만 이렇게 화를 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하니 편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괜찮다고 한다. 당신이 가서 얘기 좀 들어주라 하고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두드렸다.

 

혼자 남아 생각해보니 아이들 다치는 데 심하게 예민한 내가 보인다. 큰 애로 부터 시작되었던 아이들이 다치는 순간들이 나한테 너무 크고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 부분은 용량이 거의 다 차 있는 상태인 것 같다. 그래서 조금도 여유롭게 받아 줄 공간이 없다. 그래서 더 덜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글로 써내야 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큰 애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친 적이 있다. 그 부분은 이미 4살 때 다쳤던 팔꿈치 부분이다. 둘째 출산을 위해 한국에 있을 때였는데 세 발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 자전거만 타다 넘어지면 왼쪽 팔꿈치가 깨져버린다. 만삭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며 동의도 없이 아이 피를 뽑아 대고 수술이라는 말에 당황하자 유별을 떤다고 핀잔을 주었다.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자 다시 오면 수술 안 해준다고 협박까지 했다. 돈 받고 찍어둔 엑스레이를 다시 돈 받고 나한테 팔았는데 새로 간 병원에서는 그 엑스레이는 봐줄 수준이 아니라며 다시 찍으라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수면유도제까지 먹은 아이를 등에 업고 돌아다니던 임신9개월의 병원 복도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그래도 수술 대신 깁스를 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었지만 둘째를 출산하는 날이 깁스를 푸는 날이었고 예약을 미뤄 줄 수 없다 해서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가셨고 나는 혼자 둘째를 출산했다. 배가 너무 아프면 소리를 질러 간호사를 불러야 했고, 애를 낳고도 혼자 누워있는 나를 간호사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다. 

 

 

그렇게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각인 시켜준 바로 그 왼쪽 팔꿈치를 다시 다쳤는데 이번엔 정말 수술밖에는 답이 없었다. 네팔에서 수술을 하느냐 한국을 가느냐는 말들이 나왔고 우리는 네팔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수술 전 금식으로 정신을 쏙 빼고 수술 후 통증으로 피를 말리고 하던 그 모든 시간들에 나는 담담했다. 아이한테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화가 나지 않았다. 그 후 한 달 동안 학교를 못 가고 있는 동안에도 잘 지냈다. 다치고 처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가 팔을 쳤다며 우는 아이 앞에서 없다고 생각했지만 눌려있다가 폭팔한 나의 화를 만났다. 

 

 

다치고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아이들은 공포에 사로 잡히고 겁이 많은 우리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말을 해도 설득을 하고 설명을 해도 괴성을 지르고 울고 불고 한다. 눈 위에 작은 사마귀를 제거하기위해 큰 애를 병원에 데려간 날 나는 당황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온전한 무기력감과 패배감, 무능력함을 맛보았다. 그 날은 아이도 기억한다.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았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단다. 아이도 나처럼 병원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아이가 다치게 되면 나는 사정없이 끓어오른다.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배우게 된 건 '볼트'라는 만화 영화에서이다. 불이나는 세트장에서 구출되어 나오는 그 여자 아이의 엄마가 말한다. "everything will be okay." 반복해서 말한다.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며 아이를 진정시키는 그 엄마는 내가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괜찮다고 하는 아이에게 뭐가 괜찮냐고 하는 나는 여전히 이르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이를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다행이고 감사하고 내가 이 글을 쓴 이유가 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큰 아들이다. 그 아이가 변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갔는데 아이가 괜찮아 보인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내가 그동안 속상해 하고 그러면 얼마나 속상했어? 나 이제 안 그래. 엄마도 놀라서 그런 거잖아. 나도 알아" 쿨 하다. 그런 척하는 건지. 여하튼 미안하다 하니까 "응 알겠어. 괜찮아" 그런다. 나는 못 변했는데 아들이 변했다. 그래서 우리 관계가 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고 신기하다. 아들 덕 좀 본거 같다. 다시 일어난 일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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