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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가워.



남사친이던 남편과 처음 둘만 만나게 된 건 어느날 내가 탁 트인 곳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남편이 올림픽공원을 가자고 한 날이다.

 

답답했던 그 날 난 정말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완벽했다. 서울에서 돈 많이 안 들이고 빌딩에 가려지지 않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그 하늘 아래 있는 것 같다. 그날의 하늘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넓어지고 깊어지면 나처럼 평안하고 고요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많은 일들을 지나 여기에 왔다. 하늘이 아름다워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너무 맑아서 이곳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십여년 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매일 마주했었는데 길이 넓어지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기 시작하고 먼지와 매연이 날리더니 이제는 가끔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오랜만에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5일 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여기 하늘엔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 그건 바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저 설산. 설산 역시 전에는 가을 겨울로 아침신문처럼 보던 산인데 요즘은 선물, 아니 보너스처럼 나온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많은 산들이 있다. 그중에 세상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라고 부르고 네팔 사람들은 ‘서거르마타'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8.848m)도 있다. 그게 저 산인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너무 좋다. 뭘 또 찍냐고 남편이 말해도 난 또 찍는다. 

 

 

 


먼지에 매연에 구름에 가리워져도 산은 그곳에 있다. 날이 흐리면 저 산을 볼 수 없고 날이 맑아야 볼 수 있다. 산은 그 존재로 나에게 메시지를 준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없어도 거기에 있다. 불안이 내 눈을 가리고 염려가 내 앞에 흩날려 내 두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메시지가 나를 단단하게 한다. 잠시 불안과 염려를 내려두고 쉼을 누린다. 그 사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울어주고 웃어주고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줄 수 있다.   

 

코로나 봉쇄가 5일째 계속되고 있다. 확진자는 5명이 나왔다. 한국에 비하자면 아주 적은 숫자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의료시설이 대처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하루 한명의 확진자 때문에 봉쇄는 더 연기될 거란 말들이 나오고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세상 사람 대부분 처음 겪는 전 세계적 전염병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은 대지진 이후에도 그랬듯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정되었고 지금은 맑은 하늘을 감탄하고 있다. 조용한 하루를 지내며 아무도 만날 수 없을 때 내 존재가 나타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