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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 아무도 묻지 않을 때 나는 안다. 누군가가 물어와 설명을 하려고 하면 모른다'
-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이 글을 인용하는 거면 참 좋겠는데 여의치 않아 그냥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가져왔다. '시간'에 대해 정의하는 고충을 표현했다 한다.



어찌나 맞는 말인지. 나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려니 모르겠다. 어디서 조금 막힌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모르겠다. 



봉쇄 19일째 아이들에게 어느정도 자유롭게
노트북사용을 허락해주었다. 방학이라 기대도 있었을텐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큰 아이는 게임을 하다가 뭐가 잘 안 된다고 한숨을 쉬며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며칠 전 부터 이어진 짜증에 물었다. 게임을 재밌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재미가 없고 짜증만 나면 하지않으면 되지 않느냐 돌아온 대답은 짜증이 나는데 어떻게 하냐. 표현을 하지 말라는거냐. 


하...어찔까...


아이가 아무리 부정적으로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더라도 부모가 무한대로 다 받아주는 게 좋은걸까. 그러다가 아이가 길을 찾을까. 아니면 부모도 사람이니 말하자면 받아줄 수 있을 만큼 받아주고 못받아주는 건 못 받아줘서 사람에게는 누구든 이정도까지 감정표출 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르쳐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로 도망가지 않고 좀 더 생각해보자면

•자녀로 살았던 입장에서 

받아주면 좋을 거 같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 없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엄마에게라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적어도 세상에 한명은 나를 다 알고 있으면 좋을 거 같다. 그것도 어릴 때나 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마흔을 넘기니 딸 멀리 보내놓고 맛있는 거 먹을 때마다 내가 걸린다고 하시는 엄마에게 괜한 걱정 끼치기 싫어 늘 별 일 없고, 늘 잘 지내고 있다가 전부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지나고나서야 얘기하게 된다. 


•부모로 사는 입장에서


힘들다. 나도 힘들다. 마흔에 낳은 막내는 눈 뜨고 있을 때는 자기만 바라보라고 하지. 풍선하나 불어주고 나면 세상이 빙빙돈다. 아니 세상이 빙빙 돌아도 풍선이 안 불어진다. (불량 풍선이겠지만)체력이 바닥나 버린 상황에서는 리액션은 커녕 잘 들리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이제서야 내가 알고 있고 실제 하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안 좋을 때를 대비해서 좋을 때 잘 해 두는 것이다. 내가 에너지가 있고 아이도 자기 감정을 잘 정리해서 이야기 할 때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상황일 때 잘 쌓아두면 안 좋을때를 지날때 아이와의 신뢰관계가 크게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도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 원래 잘 못듣지..엄마도 쉬는 시간이니까 좀 있다 얘기해..가 가능해진다. 엄마도 사람이라 안될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거니까.

 


차분히 쓰다보니 내가 아주 형편없는 엄마는 아닌걸 알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는 내 마음을 다 받아줘서 고마워' 라는 칭찬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 이것도 잠시동안이다. 품 안에 자식이라지 않았던가. 한 오년이면 아니 그 전에라도 남자애들은 어느날 갑자기 말이 없어 진다던데.. 그 날이 언제고 갑자기 오게 되면 지금이 그리울 수도 있겠다. 그 전에 힘들때도 기억날 좋은 추억들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겠다. 조금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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