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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

집. 4th.



이 집에서 나는 아주 힘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단은 이 집에서 내가 겪은 일들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 하나만 적기로 한다.


둘째가 될 뻔했던 아기를 잃었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유산. 정말 어이없이 그냥 '유산'이라고 한다. 많은 엄마들이 경험한 일이라 그래서 그런건가.


어느 날 갑자기 둘째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 마음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였다. 본능인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한 두 줄로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너무 기뻤는데 다음날 부터 갈색혈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 불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곤 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기에 안심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더니 며칠이 지나도 멈추지를 않았다.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엔 몇시간씩 누워있다가 일어나곤 했는데 멈추지 않으니 하루를 누워있고 그게 며칠이 되었다. 일어날때마다 멈추지 않음을 확인하고 다시 누울때면 불안이 엄습했고 슬픔에 잠긴 마음과 하나 된 아픈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며칠을 누워있다 일어난 날이었다. 엄마가 누워있으니 집이 엉망이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모두에게 버거운 시간이었다. 안정이 되면 멈추기만 하면 다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은데 그 건 내 마음 뿐이고 몸은 몸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순서대로가 아니라 장면으로 떠오른다. 심하게 아팠고 링거를 맞았고 하혈을 했고 비가 오는 날 병원에 가서 유산을 확인했는데 이 글을 쓰며 애를 써 보아도 순서대로 정리가 되지 않고 뒤범벅되어 버린다. 그렇게 한 뭉치가 되어 나를 때린다. 그 어디 쯤에서 나는 내 뺨을 때리며 울었다. 그 모든 순간에 자책했다. 나의 잘못을 찾고 또 찾았다. 나라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 같았다.


그런데 나 빼고 모두 나에게 그만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뭘 했는데 그만해.. 내가 뭘 했는데.. 시작도 안했는데...내가 뭘 그만 해야해..." 아무에게도 공감받지 못한 고통이다. 유산. 그냥 지나간 일이다. 이후에 아이를 둘이나 더 낳았으니 슬퍼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여기까지 쓰고 더 쓸 수 없어 생각하다 잠들었고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악몽에서 깨어나 깨닫게 된다. 감정. 해결되지 않은 상처. 악취나는 고름을 내어놓았을 때 거절당했던 경험들이 모여 어느 순간 내 얼굴을 하고서는 나에게 슬퍼할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내 슬픔이 다른이에게 공감받고 위로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어느 순간에나 나와 함께하시는 또 한 분. 나의 위로자. 내가 뼛속깊이 솔직해지면 단번에 나를 번쩍 안아올려주시는 분. 을 가졌음에 안도하며 글을 쓰는 이 힘든 일을 외면하지 않도록 애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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