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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결국 나.



상황이 되지 않아 참여 할 수 없는 모임이 있었다. 그 때의 마음상태를 따라걸어본다.


'이제까지 나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모를 수 있을까? 나는 모임에 진심인 사람인데 내가 못 참석한다는 건 정말 참석할 수 없는 건데..내가 설명한 이유들이 핑계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야? 그렇다면 정말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지.'


내 입장에서 서운한 것만 생각하며 나를 옹호하는 자기연민의 늪에 푹 빠져든다. 관계가 개선되기 힘들어 보이는 만큼 깊이 빠져들며 끝까지 가라앉으면 관계를 끝내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늪에 빠져들어가고 있을 때 강한 팔이 나를 꺼내 늪 옆에 앉혀놓는다.


진흙범벅이 되어 있는 내가 나를 향해 비난을 던진다. '그러니까 바보같이 왜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했어? 알아서 잘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니야. 다 니 잘못이지. 이제 그 관계는 끝난거야. 니가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는 거라 생각한거니까. 더이상 너를 믿지 않을 거야.'


늪에 다시 빠져버릴까. 심한 내적갈등이 온다. 다른 이의 암묵적일지도 모르고 그저 무관심일지도 모르는 반응이 내 말로 구체화되어 나를 비난하는 시간이다. 나라는 과녁을 향해 내가 날리는 비난의 화살에서 피해갈 방법이 없다.


보통은 여기서 멈추고 내버려둔다. 혼자 놀래서 남탓을 하다 죄책감에 빠져 나를 비난하는 내가 꼴보기가 싫어서. 그러나 '수치심 수행원'의 존재를 알고 마음에 '이름 붙이기'를 할 줄 알게 된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왜 그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을까. 내 이유는 핑계가 아니었는데.. 아! 결국 나구나. 나는 모임을 시작할 때 중간에 빠지게 되거나 모임을 어수선하게 방해하거나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참석 못할 거 같다. 이 말을 하기가 싫어서 아예 참석을 못한다고 한 거였구나. 내가 나를 막는 벽이구나!'


성실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무기이신 부모님을 보면서 컸다. 초, 중, 고에서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이것을 인정받아 큰 무대에 서기도 했다. 성.실.함. 내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가장 큰 이유이다.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로 살며 이 '성실함'이 내 뜻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어도 아이가 울며 엄마만을 찾아대면 다른 방도가 없다. 나의 성실함은 많이 무너져내렸는데..'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모임에 참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니 내가 나를 막아서는 벽이다. 결국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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