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그냥 엄마다.

(46)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야 사춘기를 늦게 시작한 큰 애와 달리 둘째는 13살 사춘기이다. 모든 일에 시큰둥,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겠어요", "상관없어요" 가 돌아온다. 큰 애한테는 답답해서 화를 낸 적이 많았는데 둘째를 보면 울고 싶다. 내일이면 6학년 수업을 시작하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시작도 전에 미간을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요?", "왜요?", "뭐요?" 하는 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다시 태도를 논했다. 태도, 그놈의 태도를. 최근에 둘째와의 (혹은 나 혼자만의) 갈등을 겪으며 최대한 따뜻하게 조용하게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하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방학 내내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자기 전에 아이에게 친절히 인사하며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느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한참 마음을 추스르..
성장통 "그렇게 말하니까 놀러다닌다고 비꼬는 거 같잖아..." 아들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했다. 거리가 멀어서 남편이 데려다 주어야 했다. 시간이 문제였다. 남편은 시간을 바꿔보라고 했다. 아들은 친구들하고 이미 약속한 시간을 바꾸기 위해 연락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중재한다고 끼어든 나에게 아들은 감정을 쏟아낸다. 속상하다는 말이라 듣고 싶지만 말투를 문제삼으며 의도를 오해하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꾹 참았다. 아들을 데리고 온 남편이 기분이 좋지 않다. 아들은 나에게 와서 속상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중재를 하다가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심한 말이 나갈 거 같은 입술을 깨물고 남편을 불렀다. "당신이 화 난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내가 중간에서 얘기할 수록 문제가 더 커져" 남편은..
혼자만의 전쟁 둘째는 여느날 처럼 짜증을 내며 일어났고 골라준 긴소매 옷을 보더니 “이걸 입으라고요?” 했다. 반팔을 입고 팔을 감싸고 앉아있길래 추우면 잠바입으라 했더니 오만상을 지으며 건네주는 잠바를 받아 입었다. 나가려고 하는 아이의 뒷머리가 너무 엉클어져 있어 머리를 빗겨주니 짜증으로 온 몸을 떨며 나갔다. 막내 일어나기 전에 강의를 들으려고 모니터를 켰다. 강의가 슬플리 없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보다 3년은 빠르게 2차 성징이 시작된 둘째는 5학년에 완연한 사춘기아들이다. 대부분의 대답은 “몰라요”, “상관 없어요”다. 손을 잡으면 빼고 가까이 붙어 걸으려 하면 두 걸음 떨어진다. 큰 아이의 사춘기는 둘째의 사춘기를 대비 하는 백신이 되기에는 너무 약했나 보다. 무방비 상태로 서운하고 서럽다. 막내 태어나..
엄마가 저번에.. 이런 숙제 도와주다가 완전 화 냈었죠. 나 그 기억이나. 그랬니? 미안하다. 아네요. 제 기억에 제가 짜증냈어요. 숙제를 도와달라고 부르고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그래. 숙제 봐 주다가 화가 올라올 때가 많았다. 별로 기억하는 게 없다는 둘째는 가끔 이렇게 속을 보인다. 그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마음을 내비치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 서운한 것도 속상한 것도 바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는 아이가 곁을 내 줄 때 진심어린 말을 건네어 그 손을 잡아야 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제 좀 컸나봐" 가면 한 참을 나오지 못하고 뭐라도 사볼까 궁리하던 장난감 가게를 나보다 먼저 나가는 아이를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새벽에 뒤척이다 '나는 그 모두다.' 는 글귀를 만났다. 갑자기 펼쳐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가끔 가는 식당 아래층에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가게가 있다. 한 번 가면 오래도록 기웃거리며 흐트러진 장난감을 정리하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작은 자동차를 굴리기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 날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이는 평소처럼 장난감 가게를 들렀다. 남편이 손님과 함께 가고 나랑 둘이 있는데 내 마음이 바빠졌다. 난데없는 재촉은 고집을 불러일으켰다. "너 이렇게 말 안들으면 엄마 갈꺼야"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멀리안가고 장난감 가..
너를 위해 커져버린 발에 맞는 운동화를 사러가는 것도 귀찮아 하는 너를 위해. 마음에 드는 옷은 빵꾸가 나고 작아져도 못 버리는 너를 위해. 어제 일은 당연히 기억 못하는 너를 위해. 좋은 소리도 두 번 못들어 주는 너를 위해. 어색한 걸 못 참아 인사도 잘 못하는 너를 위해. 머리자르는 것을 싫어해 더벅머리 총각이 되어버린 너를 위해. 부직포 마스크의 질감을 참지 못하고 엄마가 만들어준 여러개의 마스크 중에도 오직 저거 하나만 쓰는 너를 위해. 바느질 하다 찔려 피나는 걸 보고 잠시 후에 다시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너를 위해. 만들어진 마스크를 써 보고는 "흘러내리지도 않고 좋네"라고 말하는 너를 위해.
아픈 손가락 100일을 앞두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크려면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러기엔 열이 높고 아기가 너무 어려 병원에 갔다. 밤에 열이 많이 나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준 의사에게 전화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열이 많이 났다. 밤새 못자고 있는 딸이 안타까워 잠깐이라도 눈 붙이라며 아기를 봐주시던 부모님께 고열이 나는 애를 이렇게 돌돌 말아 안고 있으면 어쩌냐고 화를 냈다. 그 밤에 응급실로 달려가지 않고 아침에 병원에 데려오라는 의사의 말을 따랐던 나에게 지금도 화가난다. 병원에선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밤을 같이 새서 피곤하신 아빠랑 다시 큰 병원으로 달렸다. 아기가 어리니 일단 입원하자고 하자는데 오늘은 1박에 30만원이 넘는 특실 하나만이 남아있단다. 다른 병원으로 달리자니 아기..
엄마 애뻐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48개월 딸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애뻐" 엄마. 엄마 예뻐? 물었더니 웅 그런다. 막내에게 젤 많이 하는 말이 우리 딸 예쁘다는 말이어서 따라하는 것이겠지만. 딸 눈에는 엄마가 예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때 내적치유 세미나를 들으며 나는 아들처럼 컸다는 깨달음이 왔었다. 초등학교 4학년 쯤 추석이니 옷을 사러 가자는 엄마말에 들떠 따라나섰는데 얻어 입은 옷은 남동생이 물려 입을 수 있는 국방색 바지였다. 둘째 큰 아버지네는 딸 셋은 전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왔다. 똑단발에 가무잡잡한 중2 아이가 원색 핑크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위대한 중2병 덕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며 크지 않았다. 남자 애들이 나를 놀리기 위해 쉬지 않고 만들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