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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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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줘요 빨리요! 막내는 내 옆에서 붙어서 잔다. 선잠이 깨면 내가 있는지 확인한다. 어제도 자는 중에 두어 번 엄마를 부르며 왔다. 잠결에 엄마가 빨리 찾아지지 않는지 팔을 휘저으며 "안아줘요 빨리요!" 를 외치는 딸을 꼭 안아줬다. 그제서야 다시 자는 딸을 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안아줘요. 안아줘요.” 하고 안겨 있다가 갔다. 딸에게 ‘안아줘요’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안아주지 않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맡겨 둔 것처럼 마땅히 요구하는 것이고 빨리 안아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일이다. 하던 일을 내려 놓고 안아주면 머리를 파 묻고 다리를 접고 꼭 안긴다. 그렇게 잠깐이지만 폭 안겨서 충전하고 간다. 확인하고 간다. 존재이다. 몸이..
하기 싫구나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 온 아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먼저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들을 찾으라고 했다. 책을 다 읽었다며 잠깐 쉬겠다 해 그러라 했다. 이제 단어를 찾겠다고 한 아들에게 공책을 달라고 했다. 공책을 보니 선생님의 조언이 가득했다. 그걸 보며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해야지 했더니 자기도 그런 건 다 안다며 짜증을 낸다. 화가 났다. "니가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그런식으로 할거면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알아서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들어야지" 죄송해요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공부하라고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한다. 공부보다 관계가 먼저라고 매 순간 다짐한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이렇게 이쁜데 다들 건강하게 지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냐고 나..
개미와 산책 산책하다 개미를 발견한 막내. 개미가 또 우리 가는 길로 잘 따라온다. 개미치고는 빠른 편이었으나 길바닥에 오래 서 있는 게 힘들어진 오빠는 이래저래 막내를 설득하지만 막내는 단호하다. "개미랑 같이 갈거야" 결국 개미가 길을 돌려 반대로 간 후에야 "개미야 안녕"을 외치고 돌아섰다. 한 100m 지만 개미와의 산책이 즐거웠는지 오늘 그곳을 지나면서 막내가 또 개미를 찾는다. 개미 추워서 집에 갔어 했더니 "힝" 하며 바닥을 한참 살핀다. 개미랑 산책할 수 있는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내가 사진 찍는 소리가 , 개미와 친구가 되어 산책하는 작은 아이의 쪼그려 앉은 모습이, 또 개미 나오면 울어버리겠다는 큰 애의 목소리가 저 사진들 속에 그대로 있다.
아들아 아들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안에 있다. 떠나기 전에 마음이 좀 그랬다. 지인에게 “아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 못 잘 거 같아” 라고 하기도 했다. 전에는 그랬다. 남편이 혼자 어디를 가거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디를 가고 나면 멍하고 느려졌었다. 내가 걱정하지 않고 방심하는 순간 무슨 일이 생길거 같아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안 좋은 방향으로. 내가 집을 떠나게 될 때는 혼자 떠난 나를 걱정했냐면 그렇지 않다. 남겨진 아이들을 걱정했다. 집을 떠나 일어날 일이 걱정인 게 아니라 내가 함께 있지 않다는 게 걱정이었던 거 같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함께면 안전하고 나와 떨어지면 큰 일이 날까. 함께일 때, 같이 있을 때 해주어야 할 일, 나를 떠나서도 잘 지낼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일을 ..
엄마 화났어? 방에 있는 아들에게 아빠 지금 나가시니까 같이 갈거면 가라고 거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아들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엄마 화 안났는데?" 무슨 소리인가 돌아보니 남편이 아들이 엄마가 화난 거 아니냐고 물었단다. 갑자기? 맥락도 없이? 의아하게 쳐다보니 아들은 왜 엄마한테 말했냐며 아빠한테 뭐라 한다. 그러더니 자기는 조금이라도 큰 소리나 퉁명스러운 말투에 마음이 어렵다고 했다. 화 안났다고 몇 번를 확인시키고 남편과 아들은 외출을 했다. 맥락도 없이 화내는 엄마였나? 생각하니 억울하다. 사춘기 들어선 아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산다고 혼자 삼킨 감정들이 한 보따리인데 말이다. 아이의 모든 문제는 엄마를 향한 화살표가 된다. 덩치가 아빠만한 아이가 말소리 하나에 예민하다니. 곱씹다 보면 작은 아이일..
갑자기 유치원생 엄마 따라 학교가느라 갑자기 유치원생이 되어 버린 막내. 몸은 크지만 성장 속도가 독창적이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긴장되면 바닥과의 접촉면적을 늘리려 누워버린다는 게 정말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지마자 누워 버리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엄마 때문에 집에서 놀지 못하고 학교에 온 아이에게 미안하고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게 미안하다. 내 수업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는 울며 엄마를 찾아오는 막내가 적응을 좀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는 길에 잠든 아이가 짠하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까지는 따라오는 아이가 고맙다. 교실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실갱이가 언젠가는 끝날텐데도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한숨은 멈..
쉽게 만족하는 나를 닮았다. 불편한 것을 싫어해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나를 닮았다. 현실적인 목표가 아닌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만 가지고 있는 나를 닮았다. 기분이 나쁘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닮았다. 아무려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나를 닮았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닮았다. 어제 너에게 화가 났던 건 니가 나를 닮은게 미안해서 였나 보다.
사랑받았다 발 모서리에 티눈이 있다. 신생아 때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자던 둘째를 안고 밤새 좁은 마루를 원을 그리며 돌다가 생겼다. 느껴질때쯤 한 번씩 봐주면 그만인데 최근에 신경쓰여서 빼고 밴드를 붙여두었다. 저녁에 양말을 벗었다. 앞에서 놀던 막내가 고개를 숙이더니 발에다 "후 후" 해준다. 밴드 붙어있다고 아프다고 발에 얼굴을 대고 후 불어준다. '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정리 하는 사이 눈물은 이미 흘러내렸다. 55개월 한국 나이로 여섯 살. " 물 주게요." 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새어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제대로 할 텐데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젠가 하며 산을 넘고 있었다. 정상을 등지고 아이를 봐야겠다. 말 시작한 지 이제 7개월 밖에 안 된 아이다. 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