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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인내


인내의 길에 선다는 것. 다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길이 주는 모든 유익을 인정함에도 머뭇거리게 되는 길이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는 길. 자기를 알지 못하고 달려드는 사나움에도 저항하지 않는 길.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더 내어놓아야 하는 길.

명백하게 밝혀진 잘못 뒤에도 있는 속사정을 알아주고. 내가 알게 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 일도 비밀로 만들어 주고. 내 편에선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사람의 슬픔도 이해하고.

비난후에 해 주는 밥도 먹고. 나를 험담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인사하는. 안면몰수를 당하고도 부탁을 들어주고. 책임은 다 지지만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양도하는. 다 걸어와서 결말을 아는 길도 다시 함께 가는.

그러면서 넓어지고 깊어지고 조용해지는 인내의 길...

이 길에서 모두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고독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외로운 길일 뿐이었는데. 이 길의 가치를 선물로 받았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모두가 나와 함께다. 하나의 님을 만나 모두를 만난다.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

그 무엇에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

- 아빌라의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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