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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에 대하여

실패 좀 해보자.



도전이라는 게 없었기에 실패도 없었던 인생이다. 하고 싶은 걸 못했다거나 크게 실패해 본 기억이 없다. 할 수 있는 것만 했고 조금이라도 못 할 거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학교도 점수에 맞춰서 갔고 처음사귄 남자친구랑 결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학원 진학 실패 하나 정도가 생각난다.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었다. 취업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대학원을 가야겠다 생각하는 딱 그 마음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심리학과에 관심이 있어 산업심리학과 원서를 다운받아 자기소개서등을 열심히 쓰고 준비해 찬 바람이 부는 날 낯선 캠퍼스에 등록을 하러 갔다. 오래 헤매다 접수처를 찾아 지원서를 내밀었는데 서류를 살피던 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인을 하더니 산업심리학과는 올해 모집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준비해 간 지원서를 내지도 못한 자체로 민망한 실패라 해 줄만하다. 대학원 진학도 딱 거기서 그만두었다. 인생에 실패에 경험이 이렇게 없다는 것이 이제야 조금 부끄럽다. 소심하게 살아도 이렇게 소심하게 살 수 있었나 싶다.


다행히 두 번째 실패를 경험했다. 브런치에 도전했다 또 떨어졌다. 처음은 준비되지 않아서 그랬다 치고 일년이 지난 지금도 심사하는 세 편의 글 중 한 편도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입니다. 우리 잡지엔 안 맞지만 훌륭해요. 당신에겐 재능이 있군요. 다시 투고해주십시오.’
만년필로 휘갈겨써서 여기저기 큼직한 얼룩이 남아 있던 이 짤막한 네 문장은 내 열여섯 살의 우울한 겨울을 환히 밝혀주었다 - <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 중에서



열 여섯 부터 거절을 당해 본 작가의 경험에 마흔 넷에 공감하게 된 것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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