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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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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무섭지 않다. 아빠 공장은 기계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불러도 들리지 않기에 전화벨소리나 초인종 소리는 최대한 크게 설정되어 있다. 기계가까이 가지 말라며 어릴때부터 들은 사고 이야기를 빼더라도 공장에 들어갈때마다 귀는 놀란다. 얼마전의 나였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말을 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잠을 잘 수 없고 위장병이 도질 그런 말이었다. 그러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뭐지? 나 왜 괜찮은 거지? 일기를 적어두고 바라보았다.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았는데, 이제까지의 나를 부정당하는 것이었는데, 신뢰라는게 애초에 없었다는 거 밖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일인데도 괜찮다. 남편은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한다. 말이 내 귀에 들리는 게 다가 아니라면서 그 말이 그 뜻이 아니란다. 저 말은 "말꼬리 잡기 시작..
구구구 열번 째 이사한 이집의 최대 난제는 비둘기이다. 제대로 마감되지 않은 연통을 통해 집안으로 비둘기가 날아들어 혼자 나가지 못하고 집안을 날아다니다 부엌 창문아래 설거지 해 둔 그릇위에 깃털과 똥을 내려두었다. 머리 위로 날아든 비둘기에 놀라 과호흡까지 온 큰애 손을 잡아 끌고 놀고 있던 막내를 들쳐안고 방으로 피해 비둘기는 열지도 못할 문을 잠갔다. 자기도 놀란 비둘기는 남편이 올 때까지 탈출을 위한 절박함으로 온 집을 날어다녔다. 가끔 널어놓은 빨래에도 똥을 싸고 베란다에도 똥을 남겨두는 비둘기들. 창문밖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매일 마주치면서도 그들의 날개짓에 일말의 경외심을 느끼지 않는 나는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 같다. To. 구구구 오늘도 창문 아래서 조용히 잠을 청하는 아이들아. 나는 너희에..
조각배 나는 작고 부서지기 쉬운 초라한 조각배이다. 거친 폭풍우는 고사하고 가느다란 빗방울도 피하지 못할 조각배는 어지럽게 흔들린다. 다행히 바다에서는 모든 배가 흔들린다. 흔들림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줄의 연결되어 항해를 계속 해 나가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작고 초라한 조각배이지만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다른 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몫의 노를 저으며 흔들릴 때는 흔들리고 바람이 불 때는 작은 돛을 펴고 함께 할 것이다. 비가 좀 내리지만 오늘은 여유롭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쓰기는 써야 하는데..쓸 수 없어서 쓰지 못하고 있었다... 몇년 동안 중보기도때마다 제일 먼저 이름을 부르던 분이 수요일 아침에 소천하셨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두 아이의 엄마이다.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의 마침표를 찍은 날이리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모든 이들을 연결하는 마음의 고통도 이제는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리라. 그러나 두 아이가 마음에 고스란히 남는다. 엄마를 잃은 딸과 엄마를 잃은 아들이. 다음날 더 아프고 다음 날 더 입을 닫게 된다. 오늘은 그 아이들의 이름도 되뇌이지 못하겠다. 눈물과 진실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며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애도해야 한다. 가야 할 길을 보았으니...
어떻게 하면 전달 할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보며 한참 답을 쓸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깐 기도하고 오랫동안 울 궁리를 한다. 슬픈 노래를 듣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한다. 어제는 세 시간 넘게 울었다. 다행히 눈물이 잘 나와주어 고맙다. 나를 살리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다. 글로 나를 흘려보내는 일이 아직도 너무 쉽지 않다. 글쓰는 내가 어색하고 답답하다. 우는 내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살 길을 찾다보니 찾아졌다. '숨결이 바람될 때'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울 수 있게 되니 한결 낫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울고 있었다. 울어야 할 일이 많아서 우는 것은 당연하고 슬픈 마음을 일으켜서라도 더 울고 있다. 슬픔을 거대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에 가두어 두어 꿈에서나 가끔 그곳에 빠지고는 했는데 이제 나는 그 수영장 물을 ..
전문가의 손길을 잘라내다. 질끈 묶은 머리가 일상이다 보니 미용실에 갈 일이 없다. 가려면야 한국분이 하시는 곳도 있지만 락다운이 아니더라도 가 본 적이 없다. 미용사님과의 대화를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마음에 안들어도 표현을 못하니 한국에서도 연례행사 정도였다. 우연히 현지사람들 교육을 위해 오신 전문가의 손길을 누렸다. 너무 길어졌을 때는 소중한 끝 부분을 고무줄로 묶어 따로 빼고 나머지 머리카락을 죄다 앞으로 당겨 이마앞에 바짝 묶어 자르면 전문가의 손길은 계속 유지가 되어 보기가 괜찮았다. 숱은 없지만 허리까지 긴 머리가 어제 저녁에는 참을 수 없었다. 전문가의 손길을 포함하여 고무줄로 묶고 부엌가위로 단번에 잘라버렸다. 몇 그람 차이가 없을텐데도 가볍다. 시원했다. 말리고 나니 섭섭함이 밀려든다. 이런일이 가끔있다. 후회할..
시작했더니. 작년 코로나 락다운기간에 바리캉을 장만했다. 남편은 반 곱슬이라 가위로도 충분한데 아들 둘 은 직모여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잘라놓고 나면 잘못 자른 부분만 계속 보이고 누구라도 머리잘랐네..하고 뒷말이 없으면 마음이 쓰이지만 길어지는 락다운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 동영상을 찾아보며 집게핀을 사며 계속 잘라왔다. 덥다는 말에 바리캉을 들었고 마음에 든다는 아들의 칭찬덕분인지 그사이 실력이 늘었는지 좀 괜찮아 보인다. 아이들 뒤통수를 바라보고 혼자 마음고생하며 보냈던 일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으니 뭐든지 시작하자는 마음이 든다. 오늘 시작하면 1일이 되는 거고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언젠가라는 오늘에 서 있을 날도 꿈꿔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언니가 심어준 씨앗으로 시작한 블로..
고마웠어 산소. 이번 락다운 시작하며 '2차 유행'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조만간 '3차유행'이 닥칠거라는 비관적인 뉴스도 끊이질 않는다. 확진자 2명으로 시작했던 1차 락다운과는 달리 오늘도 일일확진자는 7천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가까이에 확진받고 회복한 지인도 있고 확진받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도 있다. 어제는 계시던 병원에서 산소통이 비었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했다는 소식에 큰일이다 했는데 다행히 산소를 구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인도에서 산소통을 가로채는 사진을 볼 때도 그랬는데 산소통 얘기가 나오니까 가슴이 묵직하고 기분이 영 이상하다. 답답함에 물을 마셔도 개운치가 않아서 가슴을 두드리다가 알아졌다. 그 때 생각이 나는구나. 심한 기침이 일주일을 넘어가는데 열이 없다고 버티다가 쓰러진 날이었다. 초록색 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