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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맛 "멸치 먹어봤니?" 엄마랑 통화하는데 물으신다. 응? 멸치? 저번에 아들이 한국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가 보내주신 이것저것 중에 멸치가 있었나보다. 시원찮은 대답에 안 먹어본 걸 알아차리시고 먹어보라고 맛있다고 하신다. 말을 꺼내신 이유는 냉동실 정리하다가 손질해둔 멸치를 더 발견하시고는 이것까지 보냈어야 하는데..했던 엄마의 아쉬움이다. 또 며칠을 흘려보내고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냉동실을 휘저어 멸치를 찾아냈다. 꺼내어 큰 애 책상에 덜어주었다. 하나를 입에 넣더니 더 놓고 가란다. 고추장은 없냐 묻는데 고추장은 없다. 담백하고 맛있단다. 하나 주워 먹어보니 뼈가 다 발라져 있다. 눈도 침침하신 엄마는 멀리 사는 딸 생각에 작은 멸치에서 머리 떼고 똥(내장) 떼고 뼈까지 다 발라내셨다. 엄마 말씀대로 ..
수명연장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잠바 지퍼가 고장났다고 했다. 선물로 받은지 10년이 다 되어 소매 부분이 너덜너덜해져 나로서는 진즉에 버리고 싶었던 잠바였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나는 버리자고 했다. 남편은 아쉬워하며 계속 지퍼를 올려본다. 가만히 있을까..고민하다 결국 고쳐주기로 한다. 이 방법은 내가 몇년 전 시장에 가방가게 아저씨에게 가방지퍼를 고치러 갔을 때 아저씨의 기술을 어깨넘어 보고 배운것이다. 지퍼 올리는 부분을 펜치로 살짝 눌러주면 벌어지던 지퍼는 꼭 맞아 잘 올라가게 된다. 이걸로 버리고 싶던 잠바를 몇 년을 더 보아야 할 것 같다.
안아줘요 빨리요! 막내는 내 옆에서 붙어서 잔다. 선잠이 깨면 내가 있는지 확인한다. 어제도 자는 중에 두어 번 엄마를 부르며 왔다. 잠결에 엄마가 빨리 찾아지지 않는지 팔을 휘저으며 "안아줘요 빨리요!" 를 외치는 딸을 꼭 안아줬다. 그제서야 다시 자는 딸을 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안아줘요. 안아줘요.” 하고 안겨 있다가 갔다. 딸에게 ‘안아줘요’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안아주지 않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맡겨 둔 것처럼 마땅히 요구하는 것이고 빨리 안아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일이다. 하던 일을 내려 놓고 안아주면 머리를 파 묻고 다리를 접고 꼭 안긴다. 그렇게 잠깐이지만 폭 안겨서 충전하고 간다. 확인하고 간다. 존재이다. 몸이..
[내가 나를 치유한다] 서론 - 자기 인식 우리가 일평생 감기를 앓고 낫기를 반복하듯이, 신경계를 기반으로 감각하고 욕구하고 생각하는 인간은 모두 가볍거나 심각하게, 길거나 짧게 신경증을 앓고 낫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P23 신경증에 대한 거리감은 사회적으로 좁혀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신경증’은 비밀에 붙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쿨하게 인정하고 시작하자며 감기에 빗대어 준다. 맞다. 짧고 길게, 심각하거나 가볍게 신경증은 감기와 같다는 사실이 맞다. 책을 읽으며 신경증 이거 너무 친근한데 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면에서 죄어오는 압박에 너무 시달리는 사람은 진실한 나와 멀어질 수 있다. 이렇게 진실한 나를 잃은 사람은 양심이나 이성에 따른 내부 명령에 얽매여서, 절대 완벽한 존재가 되려고 모든 기력을 써 버리기 쉽다. P2..
선물 선물해야 할 분들을 위해 사 둔 선물 포장에 하루를 다 썼다. 선물을 사러 다니느라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다. 이번엔 남편 선물을 미리 사 두었다. 매년 우리가 반드시 챙겨야 할 선생님들을 위한 선물이 제일 먼저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 본 적인 거의 없다. 다행히 올 해는 옷 한 벌씩 사 주었다. 남편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결혼하고 처음인 거 같다. 다른이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해야 할 일을 제일 먼저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의무를 먼저 이행하는 삶을 사는 거 같다. 의무를 다하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리면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지 못한다. 오늘 더 속상한건 나와 나에게 속한 것들을 챙기지 못하는 나이다. 방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녀도 내가 피곤하면 청소안하고 앉아있는 거 말고. 잠시라..
시작도 못한 애도 암 선고를 받는 꿈으로 잠을 깼다. 갑자기 이 무슨 꿈인지 그 분께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주에 한국에서 손님이 오셔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하다 딱 한 번 울었는데 우리를 이곳으로 오라 하시고 암으로 돌아가신 선임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우연히 내가 모임에서 "겨울이 무섭다" 고 말한 기억이 났다. 말하고 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한참 생각했었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언니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새로운 나라의 겨울을 아직 적응하지 못한 1월 초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2년 모자란 20년 만에 겨울이 무서운 나를 알았다. 추워서 만이 아니었다. 겨울 없는 나라에 살고 싶은 마음이. 첫 아이 임신중이었다..
하기 싫구나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 온 아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먼저 책을 읽고 모르는 단어들을 찾으라고 했다. 책을 다 읽었다며 잠깐 쉬겠다 해 그러라 했다. 이제 단어를 찾겠다고 한 아들에게 공책을 달라고 했다. 공책을 보니 선생님의 조언이 가득했다. 그걸 보며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해야지 했더니 자기도 그런 건 다 안다며 짜증을 낸다. 화가 났다. "니가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그런식으로 할거면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알아서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들어야지" 죄송해요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먼저 공부하라고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한다. 공부보다 관계가 먼저라고 매 순간 다짐한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이렇게 이쁜데 다들 건강하게 지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않냐고 나..
개미와 산책 산책하다 개미를 발견한 막내. 개미가 또 우리 가는 길로 잘 따라온다. 개미치고는 빠른 편이었으나 길바닥에 오래 서 있는 게 힘들어진 오빠는 이래저래 막내를 설득하지만 막내는 단호하다. "개미랑 같이 갈거야" 결국 개미가 길을 돌려 반대로 간 후에야 "개미야 안녕"을 외치고 돌아섰다. 한 100m 지만 개미와의 산책이 즐거웠는지 오늘 그곳을 지나면서 막내가 또 개미를 찾는다. 개미 추워서 집에 갔어 했더니 "힝" 하며 바닥을 한참 살핀다. 개미랑 산책할 수 있는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내가 사진 찍는 소리가 , 개미와 친구가 되어 산책하는 작은 아이의 쪼그려 앉은 모습이, 또 개미 나오면 울어버리겠다는 큰 애의 목소리가 저 사진들 속에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