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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갑자기 무지성 돌격!


짐 싸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수련회에 헤어 드라이기를 챙겨오지 못했다. 첫 날에 젖은 머리로 다니는 막내와 헤어 드라이기 빌리러 다른 방에 가겠다는 첫째를 통해 알았다. 엄마가 헤어 드라이기를 안 가져와 젖은 머리로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되었다는 것을..

이튿날에도 수영을 했다. 다들 머리를 말렸는데 막내만 젖은 머리다. 감기 걸릴까 걱정도 되고 나의 실수가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헤어 드라이기를 빌려야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으로 직업탐험을 하러갔다. 우리 조 아이들 여덟 명과 두 분 선생님들과 함께 열 명이 프로그램이 준비된 방으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헤어 드라이기가 보였다. 그 순간 바로


저 이것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라고 했다. 프로그램을 돕기 위해 서 계시던 청년 선생님께서 당황한 표정으로 "지금 담당 선생님께서 순서를 인도하셔야 하는데요?" 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눈은 프로그램을 시작하시려다 내 질문에 말문이 막혔지만 온화하게 나를 쳐다보시는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께서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시며 그러시면 다른 방에 가셔서 말리고 오셔도 된다고 하신다.


나 지금 뭐 한 거지? 갑자기 멍해져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아니라며 고개만 저은 뒤 자리에 앉았다. 나 지금 여기서 헤어 드라이기를 요란하게 틀어 내 아이의 머리를 말리려 했던 것인가..진정 나는 미친 것인가?


그동안 나를 오해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보며  서운해했다. 또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걸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카톡 소리에 상대가 깰까봐 카톡도 시간맞추어 보내려 하는..여기도 갑자기 무지성 돌격할때가 있는 것은 함정) 생각이라는 게 아예 없는 사람처럼 하는 소리에 당황하셨던 모든 분들께 그래서 "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하셨지만 넘어가주셨던 모든 분들 덕분에, 그 은혜로 내가 살았다.


내가 준비된 줄 아시고 정확히 나를 보게 해 주시기 위해 만들어진 한 편의 연극같지만 이것은 분명 현실이고 있었던 일이다. 무지성 돌격을 하는 나를 보게 해 주시려 등장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그동안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지나간 흑역사들이 대부분 이해가 되었다. 하나에 꽃히면 갑자기 시야가 콩알만큼 좁아져서 그것말고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그거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뜬금없이 갑자기 또 그 얘기 하고 말하지 않더라도 속으로 그 생각하고 있는 나이다.


에너지 자체가 제한적이니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에너지가 그 하나에만 집중되어야 하는 능력부족 인간의 표본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이고 주변을 당황시켰을지 모르겠다. 늘 그렇게 살면 일관성은 있을텐데 안그러다가 갑자기 그러니 ' '이거 뭐지? 나랑 싸우자는 건가? 아닌거 같기는 한데..' 와 같은 혼란을 야기시켰다.


여기에 소통의 부재가 더해진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시겠지. 그래서 날 오해하지는 않으시겠지 하는 바램의 눈빛과 몸짓만 무수히 생성되어지고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소통의 기술을 배워가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그 이상의 숨은 뜻까지 알아차리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할 소통의 몫은 내가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물론 남편 그리고 나의 좋은 친구들과 나를 오래 참아주어 내 곁에 머무는 모든 사람에게다. 그것이 나의 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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