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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나는 그 모두다.



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오신 날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술상이 차려졌고 시간이 지나며 격해지던 감정이 폭팔해 아빠가 일어나 나가려 하셨다. 엄마는 아빠를 잡으라고 울부짖었다. 실패하면 엄마가 죽을 것 같아 휘젓는 아빠 다리에 달라붙었고 성공했다. 잠이 들었다. 이번엔 아빠의 불안한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시장에 가신 엄마를 동네에서 찾아다니며 이집 저집에 나를 들여보냈다. "우리 엄마 여기 있어요?"

20년이 넘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다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방에서 나를 안고 계시는 주님을 만났고 지금의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렸던 아빠, 엄마가 지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든든하게 계셔주심에 감사하다.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작은 아이의 목소리에 깊은 곳에 잠겨있던 상자가 열렸다. '어떤 불안'은 '버림받을 까봐'였고 비릿한 울렁거림은 중년의 내가 다섯살로 작아지는 속도의 부작용이었다.

50개월에서야 말문이 트이려는 딸에게 '엄마 말 안 들으면 가버린다'고 하고 가게 안에 아이를 버려두고 나왔다. 버림받은 아이의 표정을 눈으로 보았다. 모르고 저지른 잘못과 알고도 저지른 잘못 사이에 선 나는 아무도 탓할 자격이 없다.

❝ 여든 살에 다가서며 나는 온전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없음을 안다. 유일한 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애정 어린 팔로 감싸는 것이다. 이기적이되 관대한, 악의적이되 동정적인, 비겁하되 용감한, 기만적이되 신뢰할 수 있는 모습들 말이다. “나는 그 모두다”라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모습 전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 안에 숨어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두게 되며, 세상에 깃든 빛과 그림자의 복잡한 혼합물에 창조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
파커 팔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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