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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엄마 애뻐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48개월 딸이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애뻐"
엄마. 엄마 예뻐? 물었더니 웅 그런다.
막내에게 젤 많이 하는 말이 우리 딸 예쁘다는 말이어서 따라하는 것이겠지만. 딸 눈에는 엄마가  예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때 내적치유 세미나를 들으며 나는 아들처럼 컸다는 깨달음이 왔었다. 초등학교  4학년 쯤 추석이니 옷을 사러 가자는 엄마말에 들떠 따라나섰는데 얻어 입은 옷은 남동생이 물려 입을 수 있는 국방색 바지였다. 둘째 큰 아버지네는 딸 셋은 전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왔다.

똑단발에 가무잡잡한 중2 아이가 원색 핑크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위대한 중2병 덕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며 크지 않았다. 남자 애들이 나를 놀리기 위해 쉬지 않고 만들어내는 별명은 정말이지 다 사실에 근거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대학생이 된 다 큰 딸이 중년이 된 엄마에게 눈물 찔찔 흘리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엄마는 엄마는 나한테 예쁘다고 해주면 안되었냐고. 난 엄마한테 예쁘다는 말 한번도 못 듣고 컸다고 웅얼거렸다. 사실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늘 착하다는 말을 들었지 예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언제 너한테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냐. 말 안해도 엄마한테 딸은 언제나 예쁘다. 이런 말을 하시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 엄마는 어릴적부터 니가 교회에서 앞에 나가서 사회보고 찬양인도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씩씩하게 하는 게 정말 좋았어. 그래서 니가 남자같이 크는 게 좋았나봐. 미안하다. 예쁘다는 말을 정말 안 했었던 거 같네. 이제부터 많이 해줄께. 예쁜 내 딸 "

이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시며 애 셋을 낳고 중년이 된 나에게 예쁜 딸이라고 부르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 내가 한 말이 엄마마음에 얼마나 깊이 꽂혀버렸는지 보게 된다.

우리 엄마는 예뻤다. 나는 가무잡잡하지만 엄마는 하얗고 단아하셨다. 엄마 몰래 엄마 화장품을 발라보기도 하며 얼굴이 하얀 엄마가 부러웠다. 옛날 사진을 보며 말해도 늘 "내가 뭐가 예뻐. 니가 더 예쁘지.."

내 딸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로서 나를 알아가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기도 하고 해도 되는 것은 꼭 해내는 엄마로 살아가며 너에게 보여줄께.

엄마 애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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