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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에 대하여

내 친구 앤.



연립주택 반지하에 살았다.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집을 빙 돌아갔는데 그 공간이 뒷마당이기도 했다. 3층에 사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책 볼 사람이 있으면 주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딸이 볼거라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주인아주머니는 뒷베란다를 통해 책꾸러미를 마당으로 던지셨다.


빨간머리 앤과 함께 소공녀, 작은아씨들까지 내 어린시절의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노란종이의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밖이 환할 때 읽기 시작해 방이 어두워져도 불을 켜지 않고 읽어 안경을 일찍 쓰게 되었다.


앤이 메튜의 마차를 타고 달리던 길. 다이애나와 걷던 길들을 나도 걸었다. 앤이 느끼던 절망과 기쁨, 부끄러움과 두려움, 거침없이 쏟아내는 감정들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이사오기 몇 주 전인 걸로 기억한다. 늘상가던 친구네 집에 갔다. 친구엄마 방에 먼저 가서 인사하고 친구 방 문을 열었는데 모르는 여자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ㅇㅇ이 어디있어?" 내가 물었다. "여기 없는데~~" 방 안을 둘러보다 문을 닫고 친구엄마방에 다시가서 물었다. "ㅇㅇ이 없는데요?" "아니. 친구들하고 방에 같이 있어." 친구 방 문을 다시 열었더니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기시작했다. "여기 없다니까~" 방문을 닫고 잠깐 가만히 서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갔어. 갔어. 이제 나와. 까르르르"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고싶어 서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몰라서 잠깐 머뭇거렸을 뿐이었는데 진실이 다가왔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나와 상냥하게 "나 학교 친구들하고 놀아야 해서 오늘은 못 놀겠다." 했으면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4학년의 나는 그런 아이였다. 이사를 하게 되었고 전에 살던 동네에 갈 일이 없었다.


빨간머리 앤과는 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내 안에서 뛰어나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앤에게 어떤 감사의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혼자인 시간을 시를 쓰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로 채울 수 있던 것도 앤 덕분이었고 친구와 함께 일 때 우정을 나누는 방법을 알려준것도 앤 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앤을 사랑하고 앤을 알게되면 너무나 사랑하게 된다는 것에 놀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친구 앤이 이렇게 유명해서 전세계 사람들의 친구일 줄이야.


내게도 와줘서 참 고마워. 친구야.
니 덕분에 외로워도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 있었어. 언젠가 나 같은 아이들에게 너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을 주어 고마워.


출처 네이버 블로그 들꽃과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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