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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에서 받은 선물. 2013년 6월 12일 비어있는 새 집을 보고 오면 여기서 어떻게 살았나 싶고 얼른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기는 아깝고 가져가기는 그런 물건들에 대해 판결을 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이사를해놓고 예전집을 정리하러 가보면 이벽 저벽에 해 놓은 아이들의 낙서가 마음을 잡는다. 맞아.. 여기서 이런일이 있었지 애들이 이렇게 놀았지 하는 마음이 들며 다시 이집에 살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미련이 올라온다. 분주하게 집주인과 인사를 하고 나오지만 말이다. 새집을 정리하며 다짐한다. 하루 하루에 충실하자. '마지막'이 주는 선물이다. ................................................................. 5th 에서 6th로 이사가..
일상의 밥. 남편이 큰 애들 둘 데리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온라인강의를 들으러 갔다. 어제 끓여둔 미역국을 데워 막내를 먹이는데 잘 먹지 않는다. 숟가락 앞부분만 조금 먹고 만다. 가만히 보니 어른 숟가락이다. 입에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다. 아가 숟가락을 다시 가져와 먹이니 두 세번 더 먹고 만다. 첫애를 키울 때는 먹이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생각만큼 잘 먹지를 않아서, 안 먹는 게 너무 많아서, 지금은 키도 몸무게도 나를 초월했다. 어릴 때 잘 먹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건강해서 일년에 한번쯤 감기를 앓아도 하루면 회복했다. 친구가 한국에서 보내 준 좋은 이유식기를 써서 열심히 한다고 했었는데도 이유식을 잘 못해서 편식을 한단 얘기를 들었을땐 속상도 했다. 둘째는 이유식도 그랬고 지금도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 ..
집 6th. 땅이 움직인다. 찬양이 끝나고 대표기도가 시작되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바닥이 파도처럼 내려갔다 올라온다. 그 위에 얹어져 있던 내 몸은 힘없이 파도타기를 한다. 눈은 떴어도 몸을 세울 수가 없다. 땅은 계속 파도를 타고 겨우 벽을 짚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데 코끼리 코를 20번쯤 한 후와 같다. 번뜩 애들이 떠올라 미친듯이 이름을 부르며 주일학교예배를 드리던 2층으로 뛰어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다. 다행히 애들은 이미 밖에 피해있었다. 휘청거리며 내려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그리고 몇군데 무너진 곳을 바라보며 다들 넓은 마당에 모여 앉아 예배를 마저 드렸다. 다시한번 땅이 파도를 일으키며 교회 창문들이 떨리고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와 더불어 바람이 불며 어두워 지던 하늘이 몸을 흔들어 댔다. 집에 돌아와..
집 5th. 가난보단 옹졸함이 부끄럽다. 이 집에 살면서 그런 일기를 쓴 적이 있다. 남편에게 이번 달 생활비를 달라 했더니 300루피 (약 3000원)를 주면서 잘 쓰라고 해서 속상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분명 남편은 기억도 하지 못할 장난을 나 혼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무슨 낭비라도 할까 봐 생활비를 안 준다는 둥 혼자 서운해한 흔적들이 우습다. 당연히 그때는 지금처럼 웃을 수 없던 이유가 있었지만. 애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하면 대신 과일을 먹여야지. 라고 생각했다. 과자도 사고 과일도 살 순 없으니까. 그날도 유치원에서 애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 길에 애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 애들이 좋아하던 봉지과자가 한 개에 40루피였으니 두 개 하면 80루피다. 그 돈이면 더 보태서 사과 1kg를 살 수 있으..
보물 일기. 아이들을 위해 써둔 일기장이 있다. 내 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일기이다. 아이들 대신 내가 써둔 일기장. 어렸을 때 일이 궁금해 지는 건 아이를 낳고 나서인 것 같다. 어릴 때 잠 안 자던 둘째를 보며 뒤집지 않고 잘 기어다니지 않던 셋째를 보며 누굴 닮았나. 내가 그랬나. 이런 것들은 애를 낳고 나서야 궁금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어 엄마에게 물어보면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 물어보고 싶을 때 내가 없다면 영원한 비밀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만이 아닌 건 택이 아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가 큰 대회에서 우승하며 택이 아빠가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기자가 태몽이며 태어난 시를 물어본다. 아무대답도 못하는 아빠는 엄마가 없는 아..
나는 그냥 엄마다. 미운 세 살, 거친 말이 들어가는 일곱 살, 그리고 사춘기. 아이들을 키울 때 한 번 씩 겪는 고비들인데 실은 나는 유행처럼 하는 말들은 믿지도 않고 잘 쓰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데 살아오고 보니 그 단어들은 지혜가 주는 경고 같은 것이다. 세 살, 일곱 살이 그리고 사춘기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만큼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변화를 요구당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 힘들고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갓난아이는 자기의 생명을 부모에게 맡긴다. 처음에는 내가 이 생명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느끼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 그 생명에 대한 모든 결정이 내 것인 양 느껴진다. 내가 옷을 입히고 내가 먹이고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당연해질 때쯤 아이는 이제는 자기도 이 결정들..
불안 일기 노트북을 손에 들고 문을 열었는데 셋째가 갑자기 뛰어나가다 넘어져 얼굴을 바닥에 부딪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잠시 후에는 유모차에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모차가 뒤집어지며 아이를 덮쳤다. 소스라쳐 일어났더니 꿈이다. 외출의 자유가 자유인지 알 지 못했을 지난달에 막내만 데리고 외출할 일이 있었다. 내가 잡은 약속이었고 의미가 충분한 모임이었다. 그런데도 전날 밤 나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수영장에서 일렁이던 물이 갑자기 살아나서 내 옆에 서있던 막내를 삼키는 꿈을 꾸었다. 바로 알아챘다. 아이와 단 둘이 하는 외출이 불안했던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불안하고 외출할 일이 있는 날은 더 불안하다. 불안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다. 다칠까, 넘어질까,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봐 애지중지 하는 마음은 어느 ..
나는 괜찮아. 아침에 큰 아이가 부엌에 와서 의자에 앉았는데 우찌끈 쿵 하며 의자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깜짝 놀라 보니 아이가 일어나면서 “엄마 나는 괜찮아.” 한다. 싸서 비지떡인 듯한 의자는 바닥에 접힌 것처럼 붙어있었다. “안 놀랐어? 안 다쳤어?” 되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소동이 지나가고 큰 아이는 자기 일을 하러 갔다. 마음 한편이 찡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에겐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고, 우리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는 증거이다. 큰 아이는 유치원을 한국에서 다닌 적이 있다. 아이가 집에 도착하고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오늘 유치원에서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아이가 서랍을 열다가 손잡이가 빠졌는데 그 서랍은 원래 낡아서 그런일이 자주 있으니 괜찮다고 달래주셨는데도 전혀 진정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