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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

집 6th.

땅이 움직인다.

 

 

 

 

 

여기서 시작한 숫자가

 

이렇게 까지 늘어나는 걸 보며 울었다.

 

 

 

 

 

 

 

 

 

찬양이 끝나고 대표기도가 시작되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바닥이 파도처럼 내려갔다 올라온다. 그 위에 얹어져 있던 내 몸은 힘없이 파도타기를 한다. 눈은 떴어도 몸을 세울 수가 없다. 땅은 계속 파도를 타고 겨우 벽을 짚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데 코끼리 코를 20번쯤 한 후와 같다. 번뜩 애들이 떠올라 미친듯이 이름을 부르며 주일학교예배를 드리던 2층으로 뛰어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다. 다행히 애들은 이미 밖에 피해있었다. 휘청거리며 내려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그리고 몇군데 무너진 곳을 바라보며 다들 넓은 마당에 모여 앉아 예배를 마저 드렸다. 다시한번 땅이 파도를 일으키며 교회 창문들이 떨리고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리와 더불어 바람이 불며 어두워 지던 하늘이 몸을 흔들어 댔다.  


집에 돌아와 보니 파이프라인이 부서져 물이 다 새어버렸다. 물은 일단 우물을 퍼서 쓰기로 하고(카트만두에 집들은 우물물을 많이 쓴다. 이로 인한 지하수 부족이 지진의 이유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집을 둘러보니 다행히 몇군데 금만 간 정도였다. 집에 들어가는게 위험하다고 하니 애들은 밖에서 놀게 하고 가스레인지며 필요한 것들을 꺼내 저녁을 해 먹었다. 무슨 정신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다. 그 하루 내내 스무번이 넘는 진동이 땅을 흔들어댔다. 


잠을 자는 중에도 땅이 흔들리면 모두 잠에서 깼다. 그리고 밖에 나와있다가 멈추면 다시 집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아침은 밝았지만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도 교실과 담이 무너졌으나 복구는 아직 이르다고 해서 미뤄졌다. 넓은 장소가 안전하다고 하니 근처의 담이 이미 무너져 있는 유치원 마당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귀퉁이 자리가 남아 우리도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서로 바라보고 앉아있다가 땅이 울리면 불안해 일어서고 그러다 소위 가짜뉴스(30분 후에 지진이 온다는 등)가 들리면 그 시간까지 숨을 죽였다. 두려움이 모여 만들어낸 웅성거림이 맴도는 그 유치원 마당이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두의 동의로 다음날 부터는 그냥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지금도 가족들이 모두 캠핑온 것 처럼 우물물을 길어 밖에서 밥해 먹구 다같이 마루에 모여 잔 시간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지진 났을때 너무 좋았는데..다같이 모여서 지내구.." 라고 얘기한다. 지진만 빼면 지진났을때가 너무 좋았다구. 맞다.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이기적이 되기 쉬운 그 상황에서 물건값도 일절 올리지 않고 오히려 오가는 사람들 마시라고 생수통을 밖에 내 놓은 사람들에게 감동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천천히 일상이 돌아와 남편은 학교에 가고 나와 아이들만 집에 있는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던 그런 자잘한 지진이 아니라(요즘도 간간히 지진이 오는데 5.0 이하는 느끼지도 못한다.) 땅이 출렁거리는 지진이 왔다. 큰 지진을 맞은 사람은 몸이 지진계가 되는거 같다. 시작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흩어져 놀고 있던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애들을 두팔로 끌어앉고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너무 큰 소리로 불러서 놀랐다고 했다. 


큰 지진이 (약 7.0이상) 나면 바람이 분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도 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든 사실은 땅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일. 절대적인 기반. 그 위에 모든 것을 두고 사는 우리들에게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할 땅이 움직이는 것이다. 땅이 움직이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미니멀리즘이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지진 전후의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진동에 예민해졌다. 비행기가 기류변화로 흔들리면 전보다 몇 배로 마음이 어렵다. 바로 가지고 나가야 할 것들을 모아둔 가방을 준비해 두었다. 가끔은 자기전에 지진이 나면 이렇게 해야지 라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처음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걱정이 많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나면 일상을 장악하는 불안의 기운이 사그러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순간엔 그 때의 감정이 순도 100%로 나를 흔들어 댄다. 고백하건데 지진에 대해서는 일기에도 쓴 적이 없다. 위의 사진을 캡쳐하려고 오래된 기사부터 검색하는데 사망자 숫자가 멈추지 않고 늘어나는 것을 보며 엉엉 울었다. 눈물의 의미를 아직은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같은 일을 겪었는데 그들은 숫자로만 존재하고 나는 살아있다. 그 숫자가 너무 아프다. 처음으로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5년만에야 그 때를 마주할 준비가 된 나는 정말 느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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