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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

집 5th.

가난보단 옹졸함이 부끄럽다.

 

 

 

 

이 집에 살면서 그런 일기를 쓴 적이 있다. 남편에게 이번 달 생활비를 달라 했더니 300루피 (약 3000원)를 주면서 잘 쓰라고 해서 속상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분명 남편은 기억도 하지 못할 장난을 나 혼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무슨 낭비라도 할까 봐 생활비를 안 준다는 둥 혼자 서운해한 흔적들이 우습다. 당연히 그때는 지금처럼 웃을 수 없던 이유가 있었지만.  

 

 

애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하면 대신 과일을 먹여야지. 라고 생각했다. 과자도 사고 과일도 살 순 없으니까. 그날도 유치원에서 애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 길에 애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 애들이 좋아하던 봉지과자가 한 개에 40루피였으니 두 개 하면 80루피다. 그 돈이면 더 보태서 사과 1kg를 살 수 있으니 사과를 사줘야겠다 생각하고 애들을 설득해서 과일을 파는 손수레로 갔다. 사과 4개를 사서 집에 갔다. 애들 씻기고 앉아 사과를 반을 가르니 사과가 상했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사과가 속이 시커멓다. 다음 사과는 다행히 괜찮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나머지 두 개 마저 속이 멍이 들어서 겉 부분만 도려내도 못 먹을 맛이었다. 당장 사과를 가져가서 바꿨어야 했는데 졸음이 쏟아지는 애들을 다 챙겨서 나갈 수도 없고 애들만 두고 갈 수도 없어서 포기했다. 그냥 과자나 사 줄 걸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계속 사과 생각을 하고 있으니 15루피나 더 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여기는 대부분 물건을 무게 단위로 책정해서 파는데 가지고 있는 추보다 물건이 무거우면 물건을 덜어 낼 정도로 셈이 약한 사람들이 있다. 내 사과가 1kg 조금 넘었다고 아저씨가 더 많이 붙인 거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오래 기억을 못하는 편이라 그 일은 그렇게 잊어버려졌다. 그러니 그날도 또 그 과일 손수레를 찾은 거다. 또 사과를 사고 지갑을 여는데 갑자기 그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몇 주전에 사갔던 사과가 다 상했다며 진상을 부릴 용기는 없어도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 나는 아저씨의 계산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1kg가 넘었다면서 얼마를 더 붙이는 아저씨에게 사과를 한 개 빼라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다시 계산을 했는데 나도 같이 계산을 했다. 아저씨 계산이 2루피(20원) 틀렸다. 아저씨에게 내 계산을 보여주었더니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나는 손을 내밀고 2루피를 거슬러 주라고 했다.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나를 아래 위로 쳐다보고는 아주 천천히 2루피를 내어 주었다. 한마디로 기가 차다는 말을 온갖 제스처로 표현하셨다. 뒤통수가 따가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부터 나는 그 과일 손수레 집을 지나가는 일이 너무나 불편해졌다. 그냥 다닐 수 있던 길이 돌아가고 싶은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 아니었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오래 간직할 깜냥이 없는 나는 기도했다.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말씀드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외국인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나를 안다. 그 손수레 아저씨도 내가 외국인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약자이다.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와서 사는가? 이런 생각들이 나를 두렵게 하다가 죄책감으로 누르고 있었다. 꺼내놓은 마음들 위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손길이 다가왔다.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시간이 걸렸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물건 값을 깍지 않는다. 택시를 탈때도 너무 비싸게 부르면 조용히 다른 택시로 간다. 물건을 살 때도 지나치게 비싼 것 같으면 조용히 내려놓고 다음 가게로 간다. 그렇게 8년이 되어간다. 그 부르심에 동의한 것은 누구에게 보다 나에게 제일 큰 유익이다. 현지인들을 상대로 싸울 권리를 포기함으로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하다. 무엇보다 이런 삶이 가능했던 것은 이 나라는 바가지가 거의 없는 편이다.  100배 바가지를 씌우는 나라와 옆동네이지만 여긴 기껏해야(내 경험으로는) 5루피 10루피 정도이다. 단 예외적으로 내 물건이 아닌 경우에는 흥정을 하기도 하고 불합리한 경우 대신 얘기해주기도 한다. 내 삶의 방식은 나에게만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 놓았던 우물을 다시 판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부를 질투하여 그 우물들을 흙으로 메꾸었기 때문이다. 다시 판 에섹우물, 싯나우물을 다 내어주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은 르호봇 우물을 사용한다. 이삭의 지혜는 여기에 있다. 싸우지 않는 것. 오래 살다 보면 나도 여기에 속한 것 같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여기서 어느 정도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착각 말이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의 우물을 뺏어가는 그들과 싸웠다면 당장 그 우물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더 큰 위협이 닥쳐왔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고대사 회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이삭의 우물은 외국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지혜이다. 손해를 보는 것이 맞다. 그것이 이곳에서 살게 해 준 관용에 대한 보답이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나의 옹졸함을 통과해 배운 이 지혜가 좋아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내 놓았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지만 내가 가진 것만큼은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강하다. 그런데 ‘이것만큼은’이라는 마음이 나를 지켜주기보단 반대로 나를 묶어 답답하게 만들 때가 많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배워가며 어제보다 조금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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