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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수다

덧니.


사이버대학에서 한국어학과 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이지만 유일하게 오프라인으로만 가능한 실습과목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온라인 실습의 길이 열렸다. 코로나로 얻은 혜택 중 하나이다.

줌으로 30분 정도 교수님 앞에서 시연해야 하는 수업을 준비하며 혼자서 하루 종일 연습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처럼 학생들에게 발음도 보여주어야 하기에 최대한 카메라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하루 종일 연습하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웃을 때 마다 발음을 크게 할 때 마다 보이는 덧니가 그렇게 보기 싫다. 얼마전 글쓰기 모임에서 나는 내 코가 싫다고 썼다. 덧니도 그만큼이나 싫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하나 둘 교정을 시작하는 걸 보며 엄마에게 나도 교정 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치과에는 가지도 않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물어 교정은 백만원이 넘으며 생니도 뽑아야 한다며 하지 말자고 했다. 아픈 것을 싫어하는 내가 교정을 하며 후회 했을지도 모르지만 줌 화면에 드러나는 뻐드렁니는 치과에도 가보지 못한 가난 앞에 좌절된 나이다.

몇해 전 이곳을 방문하신 어른들과의 모임에서 대화가 주제가 갑자기 치아교정으로 옮겨갔었다. 치아 교정을 했는데 나이가 드니 이가 아프다. 교정도 오래 유지가 안되고 평생 끼어야 하는 장치가 불편하다. 등의 대화가 오갔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한 참 후에 나를 다독이는 대화라는 걸 눈치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더 듣기 싫은 말이 있다. "덧니가 귀엽다." 자기 덧니를 보며 귀여워 만족하는 사람도 세상에 있을 수 있다. 나도 누군가의 덧니가 귀여워 보인 적도 있다. 내 덧니는 아니다. 내가 미처 숨기지 못하는 아니 숨길 수도 없는 덧니를 위로하고 싶어진다는 건 그만큼 거슬린다는 사실도 된다. 그럴 수 있다. 나도 보기 싫으니. 그래서 나도 대답없이 그냥 웃고 넘어간다.

첫째는 그런대로 치열이 고른편인데 둘째는 너무 자유롭다. 보고 있으면 교정해줘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든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려한다. 내가 받지 못해서 또는 너무 받아서로 인해 과하게 해 주거나 전혀 해 주지 않아서 생기는 균열은 이미 충분하다.

내 덧니가 예뻐 보일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거다. 크게 거슬리지 않는 날은 올 수도 있다. 내 코를 보는 내가 지금 그렇다. 모든 기관들이 아름다움과 관계없이 기능에 집중되는 시간이 오고 있다. 그 때가 오면 그 자리에서 내가 먹는 것을 잘 씹어주는 덧니들에도 감사를 표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에게 언제나 높은 문턱이 되었던 그 때의 가난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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