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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엄마다.

참지 말고 바로바로.



참는 편이다. 감정도 표현도 참아내는 편이다. 어떤 일을 당하면 자동으로 아무 표현 없이 순간 참는다. 그렇게 사라지면 좋겠지만 대부분 소리없이 커지는 중일뿐이다.



둘째가 아침에 냉장고 받침을 부수었다. "엄마. 내가 저 안에서 뭘 꺼내려고 했는데. 이게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더라." 둘째는 원래 미안한 것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어 그 말을 던지고 자기 일을 하러 가버렸고 난 아무 말 없이 저걸 씻어서 말려놓았다.



저녁에 막내랑 놀아주던 첫째가 있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유선전화를 연결하는 라인이 저렇게 되어있었다. 첫째의 약함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순간접착제를 가져와 붙이기 시작했다. 안이 전부 부식되었는데 혼자 붙이려다 손에 순간접착체가 왕창 흘러버렸다. 뜨거움을 느껴 부엌으로 가 수세미로 손을 문지르고 있는데 큰 애가 와서 유투브 댓글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고 간다.


터질 때가 되었다. 두 아들을 불러 아빠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락다운이라 다섯식구가 종일 집 안에서 복작거리는데 나한테만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남편과 둘이 앉아 유선전화케이스를 마저 보수했다.


별거 아닌 일들을 아무 말 없이 주워담아 커다랗게 만드는 엄마다. 자고 일어나 새로워진 뇌로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어제의 일이 각색된다.


손에 묻은 순간접착제를 닦고 있는 줄 모르고 엄마 옆에 와서 기분을 살피던 아들로서는 최선을 다해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는 것이 하루가 지나니 알아진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 영원히 참지도 못할 바에 바로바로 바람을 빼가며 내 모습을 유지하는 게 서로에게 덜 피곤한 일일텐데 왜 자꾸 말도 감정도 일단 머금고 보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소리 안지른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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