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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흐르게 하며

공부 안하는 모범생?



학교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는 잠 안자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주로 이런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뭘할까? 나중에 어디에 있게 될까?


늘 앞자리에 앉았는데 가사 시간에 공책에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은 가사시간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 정말 그건 아니었지만 내 행동을 달리 변호할 자격도 없는 순간이었다. 화가 많이 나 보이셨다. 한 동안 크고 예쁜 눈으로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쳐다보셨다. 반항기 없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신 것 같았다. 선생님에게 가장 크게 혼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숙제 안해가서 종아리를 맞았던 수학시간보다도.


남편이 가수 누구 아냐고 묻는다. 팝송도 모르고 가요도 모른다. 내가 알면 정말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면 남편은 "맞아 모범생이지"한다. 모범생은 무슨. 공부 안한 모범생도 있냐.
공부도 안하고 노래도 안 듣고. 그냥 책상 앞에 잘 앉아있는 아이였다. 몸만 거기 있고 마음은 늘 둥둥 떠다녔다.


공부를 하고 있으니 큰 아들이 와서 묻는다. "엄마. 공부 하는 거 어때?" 나이가 들어서야 의자에 몸과 마음이 함께 앉아 하는 공부가 가능해졌다. 국가장학금으로 하는 공부라 학점을 잘 받아야 다음 학기도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데. 번쩍 떠오른 생각에 형광펜도 빨간펜도 분주해진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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