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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에 대하여

유명한 것들을 피하다가는.

어릴 때 부터 유행을 피하는 고집이 있었다. 왜 그런게 생겼을까. 유행을 쫒기 위해 머리핀 하나라도 사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내 용돈에는 회수권이 포함되어 있어 며칠을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야 시험이 끝난 날 아이들과의 떡볶이 회식에 낄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유행은 도무지 내가 쫒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가랑이 찢어져도 닿을 수 없다면 내 편에서 유행을 거절하는 게 정신건강에 유익했을 것이다. 

 

이게 습관이었다가 어느새 내가 되어버렸는지 베스트셀러가 그렇게 싫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때도 사서근처는 건너뛰고 저 안에 가서 책을 골라들었다. 최근 베스트셀러 한 권을 읽고 '베스트셀러는 이유가 있는 거구나'. 누구나 하는 생각을 마흔이 셋이나 넘어야 하는 나는 못난 건지 살만해 진건지. 

 

어제는 박완서 선생님의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와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를 하루에 내리 읽어버렸다. 처음에 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어나가는데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온 손녀를 먹이겠다고 송편을 해 온 할머니가 "완서야. 완서야" 를 부르며 자기를 찾았다는 부분에서 놀라 보니 자전적 소설이었다. 그 때부턴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디까지 실화일까를 고민하느라 더 빠져들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기까지 읽고 멈출 수가 없었다. 살았지만 모든 걸 삼켜버려 살아나지 못한 오빠와 시어머니에게 받은 억울한 의심을 토악질과 뱉어내고 살아내는 올케를 보며 살아갈 힘을 얻어내려면 토해내라는 격려를 받았다. 할아버지와 오빠가 돌아가셨어도 울지 않았던 완서가 울어내는 순간들은 살아내기 위한 토악질과 같은 결이었다. 그 안에서 아무리 해 보려고 해도 되지않던 내 마음을 드디어 찾아냈다.  

 

 

" 사람 없어도 계절은 바뀌고 꽃은 핀다는 사실에 우리는 새삼스럽게 둔증한 통증을 느꼈고, 간혹 가다가는 이유가 분명치 않은 청승이 치받쳐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유명한 것을 계속 피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보물을 만나고 보니 그랬으면 얼마나 손해였을까 가슴을 쓸어내린다. 눈물과 토악질로 삶에 힘을 불어넣으며 계속 살아가라는 이 귀한 지혜의 메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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